이불은 있지만, 내 방은 없습니다.
저는 거실에서 잠을 잡니다.
엄마인 저는 방이 둘 있는 집, 거실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방이 두 개인 집에서, 단 한 사람만 문을 닫지 못합니다.
그게 저입니다.
하나는 아이의 방입니다.
사춘기를 맞은 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남편의 방입니다.
퇴근 후 조용히 쉬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실에서 잠을 잡니다.
TV와 식탁, 생활 소품들 사이에 조심스럽게 이불을 펴고 눕습니다.
이불은 있지만 울타리는 없습니다.
공간은 있지만, 경계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제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몸이 좋지 않습니다.
감기 기운에 진통제를 먹고, 체력도 바닥입니다.
부엌 불빛이 거실까지 스며들고,
화장실 문이 ‘탁’ 열릴 때마다
저는 선잠에서 자꾸 깨어납니다.
몸이 아픈 날에는
그런 사소한 자극이 크게 다가옵니다.
아이와 공간 이야기를 나누다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엄마도… 문을 닫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아이가 대답합니다.
“엄마는 거실과 화실이 엄마 공간이잖아.”
아이가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거실은 모두가 사용하는 공간이고,
화실은 제가 일하는 곳일 뿐입니다.
그걸 쉼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짧습니다.
남편은 자기만의 방이 있습니다.
문을 닫고 쉴 수 있는,
명확히 구분된 공간입니다.
예전엔 이해했습니다.
각자의 필요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방이 점점 부럽습니다.
그 부러움은 서운함이 되어갑니다.
갱년기의 문턱에서
감정은 예전만큼 단단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사춘기로 예민해지고,
저는 갱년기로 무뎌지거나 예민해집니다.
그 두 감정이 하루하루 엇갈리고 충돌합니다.
요즘 자주 생각합니다.
이 집 안에서 나는 어디쯤 있는지.
식탁 옆, TV 아래 이불 위에 누운 이 자리가
과연 내 쉼일 수 있는지.
가족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지금의 방을 가졌습니다.
그 선택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도 제 자리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묻습니다.
“지금, 제일 원하는 게 뭐예요?”
저는 대답합니다.
“문을 닫고 쉴 수 있는 30분이요.”
그 30분이,
다시 제 삶을 켜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