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기대 사이, 조용히 피어나는 희망
마음에도 계절이 있다면 오늘은 곧 봄이 오는 늦겨울입니다.
달력은 분명 봄을 가리키고 있지만
내 마음은 아직 겨울을 건너는 중입니다.
긴 시간, 땅은 얼고 바람은 매서웠습니다.
세상은 차가웠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졌습니다.
그 한기 속에서 나는 버티는 법을 익혔습니다.
작년
설레는 마음으로 화실을 열었습니다.
기대도 컸고, 마음도 벅찼습니다.
처음엔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고, 수강생도 하나둘 늘었습니다.
그림을 가르치는 시간은 시작의 설렘으로, 희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힘든 시간도 견딜 만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봄은 조금 다릅니다.
한 명이 들어오면, 한 명이 나가고
화실 문을 두드리는 이들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불안했고,
화실은 멈출 듯 겨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늘 뭔가 더 해보려 애썼습니다.
밤을 넘겨 작업하고, 작은 수업 하나에도 마음을 쏟았습니다.
진심이었기에 기대도 함께 자랐습니다.
그런데도 원하는 만큼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 때면
조용한 의심들이 쏟아올랐습니다.
내가 부족한 걸까? 무얼 놓친 걸까?
그럴 때 주변에서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아이들이 그만두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야.”
“1년 만에 이만큼 아이들을 모으고 전시회까지 해낸 건 정말 대단한 거야.”
그 말을 들으며
내 안에 얼어 있던 겨울이
아주 천천히 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계엄령’이라는 단어가 뉴스를 뒤덮었습니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단순한 분노나 허탈함이 아니라
진심으로 두려웠습니다.
불 꺼진 집안
스마트폰 속 소식만 반복해 클릭했습니다.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그 밤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오늘
기다리던 단어가 마침내 뉴스 자막 위로 떠올랐습니다.
혹시 나쁜 결과가 나올까 마음 졸였지만
이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 글자
‘파면’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간 쌓인 불안과 막막함이
흘러내렸습니다.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 건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희망’이 멀리 있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진실이 움직이고
선함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는 걸 믿을 수 있었습니다.
거리는 여전히 차갑고
나는 여전히 작은 불안과 함께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만큼은 내 마음속 겨울이
아주 작게, 아주 조용히 끝나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게 봄이라면
나는 기꺼이, 오래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