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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삶 사이, 나를 지우지 않기 위해 붓을 듭니다

by 수미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자, 잘한다고 믿어온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직업’이 되었을 때, 그 믿음은 어느새 천근의 무게가 되어 어깨를 짓눌릅니다.

서른 해 가까이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쳐왔습니다.

그 시간 동안 누군가의 손을 잡아 이끌며, 동시에 나 자신을 붙잡아 왔습니다.

하지만 요즘, 자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정말 잘 그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저 남의 그림을 그럴듯하게 따라 그리는 데 익숙해진 사람인가?

베트남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다시 화실을 열며 나는 다짐했습니다.

이곳만큼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곳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마음이 치유되고, 삶이 자라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치열한 경쟁과 빠른 속도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백 같은 곳이기를.

그것은 단순한 커리큘럼이 아닌, 나의 바람이자 철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은 종종 현실 앞에서 마모됩니다.

화실을 운영해야 하고, 쌓여 있는 대출을 갚아야 하며,

매일 수업을 이어가기 위해 내 살을 조금씩 갈아넣어야 합니다.

그렇게 지치고, 어느 순간 ‘번아웃’이라는 단어에 나를 겹쳐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 일이 단순히 좋아서만이 아니라,

이 일을 통해 나는 ‘내 이름’으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딸로 살아가며

자신을 조금씩 내려놓아야 했던 시간들 속에서도

나는 이 일을 통해 나 자신을 지켜내려 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절충합니다.

내 작업을 하며 나를 잃지 않고,

아이들과 기쁨을 나누며 살아 있음을 느끼고,

작은 수익을 통해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합니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내 삶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림처럼 틈이 있고, 얼룩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조차도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입니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 사이—

그 좁고 흔들리는 틈 어딘가에서,

오늘도 나는 그림 앞에 섭니다.

지우지 않기 위해서.

나라는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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