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기서 다시 시작했다
"사람을 뭘로 보고 그딴 말을 하는 거냐!"
아버지가 어머니께 불같이 소리를 지른다.
어머니는 말없이 긴 한숨만 내쉴 뿐이다.
오래전,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지고 삶은 바닥보다 깊은 어둠을 마주한 적이 있다.
끼니조차 걱정해야 하는 시절에도, 아버지는 체면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손님이 찾아올 때면 벽에 붙어 낯가림 심한 우리 삼형제를 보고, 아버지의 지인들은 웃으며 말했다.
"너네 아버지 인물 좋지, 성격 좋지, 참 호인이야. 아버지를 닮아야 해."
아버지는 가족을 제외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업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조용히 등을 돌렸다.
떠들썩하던 이들은 사라졌고, 어떤 이들은 모질게 목을 죄어왔다.
살림이 어려워지자, 어머니를 안타까워하던 지인이 청소부 자리가 났다며
말을 건넸다. 어머니는 조심스레 그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꺼냈다.
돌아온 건 쏟아지는 욕설뿐이었다. 일이 고되고 지저분할지라도,
맡은 일을 성실히 하면 안정적인 직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남의 시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버지의 자존심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그 뒤로 아버지는 누군가 ‘사장 자리를 만들어준다’는 말에만 혹했고,
듣기 좋고 보기 좋은 말만 좇다 오랜 세월 평탄하지 못한 길을 걸었다.
그리고 지금, 아버지는 남편에게 그 ‘그딴 일’을 권한다.
베트남에서 돌아와 어머니의 장례를 마친 우리는,
격리된 채 멍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였다.
"이제 한국에 있을 건데, 뭘 먹고살 거냐?"
조심스레 묻는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오래전과는 다른 기색이 스며 있었다.
남편이 오랫동안 주말도 없이 갑질 상사를 견디며 살아온 삶을 알기에,
나는 그를 다그치고 싶지 않았다.
덜 먹고 덜 쓰더라도, 먼저 지친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 눈엔, 식구 늘려 대책 없이 돌아온 우리가 한심하게 보였던 것 같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그냥 한 번 생각해 봐라."
아버지가 말했다. 구청에서 청소부를 모집하는데, 남편이 이력서를 내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청소부라는 직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이상할 것도 기분 나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남편 역시 오랜 이국 생활을 마치고 정착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 없이 받아들였다.
예상 외의 반응에 아버지는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곧 이렇게 말했다.
"내 말 들어줘서 고맙다."
그렇게, 한때 아버지가 혀를 차며 “그딴 일”이라 부르던 그 일에,
남편은 조용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세상의 눈길이 어떻게 머무는가보다, 마음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믿게 된 지금,
우리의 삶은 그 일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