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있어야 할 곳

인간이 빼앗은 자리

by 수미

도심 한복판, 지는 해를 배경으로 붉게 물든 하늘을 뒤덮은 저 시커먼 점은 공포다.

머리 위를 압도하는 검은 물결이 뿜어내는 기운은 위협과 두려움으로만 다가온다.

새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다. 어릴 적 멋모르고 보았던 새떼가 사람의 눈을 파먹는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도 한몫했겠지만, 아침 운동 중 발에 채인 피투성이 비둘기를 본 뒤로는 ‘평화의 상징’이란 말조차 내겐 공허하다. 학창 시절, 교문 앞 좌판에서 팔던 노란 병아리의 귀여움에 반해 몇 마리를 사서 키운 적이 있다. 하지만 뭘 잘못 먹였는지 며칠 지나지 않아 쓰러져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고,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새란 곧 죽음과 이어진 존재’라는 연결고리가 생겼다.

경기도에 사는 지인에게서 한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도심 전깃줄 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줄지은 시커먼 점들. 모두 까마귀였다. 붉게 지는 해를 배경으로 하늘을 점령한 그 모습은, 마치 폐허가 된 도시를 떠도는 굶주린 좀비를 연상시켰다. 지인의 동네는 몇 년 전부터 출몰한 까마귀 떼 때문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날카로운 부리, 검은 몸통 속 빛을 잃은 눈동자가 주는 공포. 그리고 그들이 싸지르는 변으로 인한 불편함이 일상이다.

얼마 전, 일 나간 남편이 영상하나를 보냈다. 도심 건물 위, 두 마리 새가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검은 놈이 회색 놈을 공격하더니, 발로 움켜잡고 미친 듯이 쪼아댔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깃털, 역겨움에 찬 구경꾼들의 웅성거림이 화면을 메웠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고 속이 메슥거렸다. 급히 영상을 삭제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거리 청소를 하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새 사체를 종종 봤지만, 까마귀가 자기 몸집만 한 비둘기를 잡아먹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서 말이다.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는 이제 사람들의 토사물을 쪼아먹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연명하는 비만 새가 되었다. 윤기 흐르던 까마귀는 도심을 뒤덮는 어둠의 자식이 되었고,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던 까치는 까마귀와 맞서 싸우며 위세를 뽐내지만, 머리 좋은 이 새는 자신을 쫓아낸 사람의 뒤통수를 집요하게 노린다.

이 모든 풍경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새들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리를 빼앗은 인간이 돌려받는 죗값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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