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그리고 골목길

by 수미

아이는 아빠의 다리를 부여잡고 놀아 달라 매달린다.

이제는 자기가 싫어진 거냐며 생떼를 쓰기도 하고, 못 자게 할 거라며 펼쳐 놓은 이불을 접어버리기도 한다.


새벽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아빠가 영 못마땅한 아이를 달래고, 남편은 안방 문을 살며시 닫는다.

닫힌 문을 바라보던 아이는 “아빠 미워”를 연신 외치더니, 자기 방으로 휙 하고 들어간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예전 직장과 달리 지금은 휴가나 월차를 쓸 때 상사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주말이나 근무 외 시간에 불려 나갈 일도 없으니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많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새벽 근무에 배정되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선배들은 적응만 되면 새벽 근무도 나쁘지 않다 했지만, 남편은 뒤바뀐 취침 시간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

낮에는 오지 않는 잠에 눈을 붙이려 애쓰고, 밤에는 쏟아지는 잠을 밀어내느라 힘들어한다.


남편이 하는 새벽 일은 골목 사이에 놓인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이다.

쓰레기차가 들어가는 곳은 차량 뒤에 매달려 쓰레기를 실으면 끝이지만,

좁은 골목은 사전에 치워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작은 용달차를 타고 2인 1조로 골목골목을 돌며 쓰레기를 모은다.

용달차조차 들어갈 수 없는 길은 걸어서 들어가 수거해야 한다.

선배 청소부들은 “예전엔 리어카를 직접 끌고 나와야 했다”며,

지금은 용달차 덕에 그나마 수월하다 웃어 보이기도 했다.


퇴근 후 잠시 눈을 붙인 남편이 산책을 하자 했다.

평소 가던 길이 아닌 좁은 골목으로 발길을 이끈다.

“이제 와서 어디 어스름한 데 가서 입 맞출 나이도 아닌데 왜 자꾸 돌아가?” 냐며 우스개소리를 하니 이곳이 자기가 새벽마다 청소하던 길이라 낮 모습이 궁금했다 한다.

마침 봄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산을 들고 들어선 골목은 활짝 펼치기조차 민망할 만큼 좁았다.

비를 피하려 접어 든 우산 너머로, 녹슨 철대문 앞 하얀 연탄재가 놓여 있다.

밤손님을 막으려 세운 콘크리트 담벼락 위엔 깨진 병조각이 반짝인다.

어느 솜씨 좋은 이가 그려 놓은 벽화도 눈길을 끈다.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고, 누군가에겐 지친 몸을 누이는 안식처이며,

누군가에겐 산책길의 작은 발견이 되는 골목길.

그 길을,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사랑하는이와 함께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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