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까 말까 망설였다. 그냥 못 본 척 잘까도 싶었다. 칼바람이 한풀 꺾인 삼월의 시작, 알아서 잘 챙겨 나가겠지 싶었다. 하지만 계속 누워있자니 등골이 쑤셨다. 사실은 마음이 더 쑤셨다.
환하게 켜진 형광등 불빛이 방문 사이로 스며든다. 잠을 포기하고 늘어진 몸을 일으켰다.
두 달의 적응 기간을 마친 남편은 정식으로 청소 구역과 시간을 배정받았다. 초보 청소부들이 맡게 되는 ‘새벽 청소’를 배정받은 남편의 출근 시간은 새벽 1시 반. 집으로 돌아오는 건 아침 여덟 시쯤이다. 바로 ‘청소의 꽃’이라 불리는 새벽 일이 시작된 것이다.
밤낮이 바뀌는 생활이 걱정되었지만, 남편은 원래도 새벽 기상에 익숙해 “못할 게 없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이건 보통 새벽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이른 시간이라,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잠들기 전, 출근 때 입을 옷을 머리맡에 가지런히 두고, 알람 소리를 놓칠까 집안 시계들을 모두 출근 시간에 맞춘다. 일찍 잠자리에 누워 보지만, 익숙하지 않은 시간에 단번에 잠드는 건 쉽지 않다. 자는 듯 깬 듯 뒤척이던 끝에 알람이 울린다. 첫 정식 출근에 긴장한 남편은 찌뿌둥한 몸을 용수철처럼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한다.
나도 남편을 따라 몸을 일으킨다. 아직 매서운 바람이 남아 있는 삼월의 새벽, 일하다 마실 따뜻한 차를 보온병에 담고, 마스크 한 장을 현관 앞에 미리 꺼내 둔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다. 나머지는 그저 부랴부랴 준비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일뿐이다.
현관문을 열면, 어두운 아파트 복도에 센서 등이 하나둘 켜지며 남편의 발길을 밝혀준다. 나는 문을 살짝 열어 ‘잘 다녀오라’고 지켜본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남편이 고개를 돌려 손을 들어 보일 때, 그 모습이 유난히 애잔하다.
남편이 사라지면 문을 잠그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새벽에 일어날 시간이다. 몇 년간 이어온 새벽 기상을 놓친 게 은근 속이 쓰리다.
아이가 등교할 시간이 되어 남편이 돌아온다. 땀에 젖고 먼지 묻은 옷을 현관에 벗어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뜻한 물로 씻은 뒤 개운한 표정으로 나오는 남편. 그 모습을 보니 당분간은 내 새벽 시간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누리기보다, 우리를 위해 새벽을 나서는 남편을 챙기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걸 남편의 미소에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