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짧은 말들 사이로 깊은 한숨이 섞여 나왔다.
“괜찮아?”
몇 번을 물어도, 그가 괜찮지 않다는 건 수화기 너머로도 느껴졌다.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는 다급하게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내 말이 닿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잠시 뒤, 안방 문이 열렸다.
남편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함께 일하던 동료가 새벽에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쓰레기차 뒤에 매달려 일하다 발을 헛디뎠고, 발목뼈가 산산조각 났단다.
재활까지 반년 넘게 걸린다고 했다.
듣는 나도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필 사고가 난 구역은 남편이 평소 담당하던 곳이었다.
그날은 주중 있는 남편의 휴일이었다.
저녁 무렵 돌아온 남편은
“다른 데는 괜찮은데… 발목이 너무 심하게 부러졌대. 낫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몰라.”
남편의 일이 될 수도 있었던 그 사고는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돈다.
청소차에 오르내리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은 대부분 사람들이 잠든 밤에 이루어진다.
우리가 '밤'이라 부르는 시간, 누군가는 그 어둠을 일터로 삼는다.
좁은 골목에는 청소차가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청소부들은 직접 걸어들어가 쓰레기를 수거한다.
이 집, 저 집 문 앞에 놓인 봉투를 하나씩 들어 차량까지 옮긴다.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를 무거운 봉투를 양손에 들고
차량 뒤편 압축기에 던져 넣는다.
허리는 굽고, 손목은 꺾인다.
쓰레기를 다 싣고 나면,
두 명의 청소부는 차량 뒤편 손잡이에 몸을 맡긴 채 이동한다.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이, 불안하게 매달린 채 다음 장소로 향한다.
그리고 또 내린다. 또 끌어낸다. 또 던진다.
이 일은 해가 뜰 때까지 반복된다.
나는 종종 의문이 든다.
‘이 노동이 왜 아직도 이렇게 위험해야 할까?’
특히 야간 수거 중 발생하는 골절, 찰과상, 차량 추락 사고는 줄지 않는다.
하지만 그 위험은 여전히 개인의 부주의로 여겨진다.
안전장치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은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 스마트홈을 이야기한다.
더 편리한 삶, 더 똑똑한 기술, 더 빠른 일상.
하지만 그 시각, 누군가는 여전히 맨손으로 밤길을 걷는다.
빛 한 점 없는 새벽.
사람들이 깊이 잠든 시간, 누군가는 쓰레기봉투를 둘러메고 골목길을 걷는다.
등으로, 팔로, 손끝으로 도시의 뒷면을 지탱한다.
우리 집 앞에 놓인 쓰레기봉투 하나가 치워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닿아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쓰레기차를 타는 남편은,
그 곁에서 함께 땀 흘리는 동료들은
분명 21세기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여전히, 18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