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사는 18세기 청소부

by 수미

남편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짧은 말들 사이로 깊은 한숨이 섞여 나왔다.

“괜찮아?”

몇 번을 물어도, 그가 괜찮지 않다는 건 수화기 너머로도 느껴졌다.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는 다급하게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내 말이 닿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잠시 뒤, 안방 문이 열렸다.

남편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함께 일하던 동료가 새벽에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쓰레기차 뒤에 매달려 일하다 발을 헛디뎠고, 발목뼈가 산산조각 났단다.

재활까지 반년 넘게 걸린다고 했다.

듣는 나도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필 사고가 난 구역은 남편이 평소 담당하던 곳이었다.

그날은 주중 있는 남편의 휴일이었다.

저녁 무렵 돌아온 남편은

“다른 데는 괜찮은데… 발목이 너무 심하게 부러졌대. 낫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몰라.”

남편의 일이 될 수도 있었던 그 사고는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돈다.


청소차에 오르내리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은 대부분 사람들이 잠든 밤에 이루어진다.

우리가 '밤'이라 부르는 시간, 누군가는 그 어둠을 일터로 삼는다.


좁은 골목에는 청소차가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청소부들은 직접 걸어들어가 쓰레기를 수거한다.

이 집, 저 집 문 앞에 놓인 봉투를 하나씩 들어 차량까지 옮긴다.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를 무거운 봉투를 양손에 들고

차량 뒤편 압축기에 던져 넣는다.

허리는 굽고, 손목은 꺾인다.

쓰레기를 다 싣고 나면,

두 명의 청소부는 차량 뒤편 손잡이에 몸을 맡긴 채 이동한다.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이, 불안하게 매달린 채 다음 장소로 향한다.

그리고 또 내린다. 또 끌어낸다. 또 던진다.

이 일은 해가 뜰 때까지 반복된다.


나는 종종 의문이 든다.

‘이 노동이 왜 아직도 이렇게 위험해야 할까?’

특히 야간 수거 중 발생하는 골절, 찰과상, 차량 추락 사고는 줄지 않는다.

하지만 그 위험은 여전히 개인의 부주의로 여겨진다.

안전장치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은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 스마트홈을 이야기한다.

더 편리한 삶, 더 똑똑한 기술, 더 빠른 일상.

하지만 그 시각, 누군가는 여전히 맨손으로 밤길을 걷는다.


빛 한 점 없는 새벽.

사람들이 깊이 잠든 시간, 누군가는 쓰레기봉투를 둘러메고 골목길을 걷는다.

등으로, 팔로, 손끝으로 도시의 뒷면을 지탱한다.


우리 집 앞에 놓인 쓰레기봉투 하나가 치워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닿아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쓰레기차를 타는 남편은,

그 곁에서 함께 땀 흘리는 동료들은

분명 21세기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여전히, 18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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