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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씩 멀어지는 말들

by 수미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있다.

절친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렇다고 멀다고 할 수도 없는 관계이다. 몇 년 동안 연락이 뜸하다가 다시 이어진 이후로는,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차를 마시는 정도였다. 삶의 결이 크게 닮았다기보다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겪으며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정도의 거리감. 그 적당함이 편한 사이였다.


그녀는 삶은 쉽지 않아 보였다. 나 역시 버티고 있는 삶이라 그녀를 뜨겁게 지지해 주진 못했지만 그녀가 아이를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봐온 사람으로 그녀는 충분히 존중할 만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비슷한 무게의 나날을 견뎠던 우리는 어느 날부터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느날 걸려온 벅찬음성이 새어나오는 그녀의 전화. 상상하지도 못할 재력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며 신나있었다 이후 그와 결혼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살게 된 이후 그녀의 말에는 변화가 생겼다. 처음엔 자연스러운 생활의 변화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형편이 나아지면 그만큼 이야기도 넓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의 중심이 ‘값’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거 얼만 줄 알아?”

“이게 그렇게 귀한 거야.”

“너 이거 몰라?”

말의 내용보다 말 뒤에 붙는 기류가 문제였다. 설명은 길어졌고, 그 설명은 점점 더 ‘내가 알고 있는 세계’와 ‘너는 모르는 세계’를 나누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그저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자꾸만 어떤 선이 그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 후 그녀가 이사한 아파트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그저 ‘괜찮은 곳인가 보다’ 하고 넘겼다. 나는 아파트 브랜드나 시세에 밝지 않다. 한참 뒤에서야 그곳이 지역에서 가장 비싸다고 알려진 단지라는 사실을 알았다. 알고 난 뒤에도 놀라움보다 당혹감이 컸다. 그저 “아, 그래?” 하고 넘겼던 나의 반응이 그녀에겐 어색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그 순간 나는 몰랐고, 몰랐다는 이유로 조금은 어린아이처럼 설명을 듣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명품 가방과 신발, 새로 산 옷, 주식으로 벌어들인 수익까지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그 말이 악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기쁜 일이 생기면 말하고 싶은 마음, 삶이 나아지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 그런 것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내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외면할 수 없는 어색함이 매번 자리를 잡았다.


어떤 날은 그녀가 입던 옷들을 건네주었다. “너 입을래. 이거 명품브랜드야.”

처음엔 그저 호의라고 생각했다. 덤덤히 받아 들고 왔다. 하지만 집에서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보다가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밀려왔다. 입으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면서, 손에 쥐고 있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내 마음은 어딘가 불안해졌다. 그 불편함은 물건 때문이 아니라, 그 물건이 내 손에 오기까지의 맥락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결국 모두 버렸다. 그렇게 버리자 묘하게 내 마음은 가벼워졌다.


상대가 변한 건지, 내가 예민해진 건지 혼란스러웠다. 한참을 스스로 돌아보고 질문했다. 혹시 내가 가진 결핍이나 비교심이 그녀의 말과 행동을 과하게 받아들이는 건지, 혹은 내가 과거의 그녀를 기준으로 지금의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순간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불편하지만, 그래도 피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생각이 길어질수록 더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었다. 관계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상대의 부나 성공이 아니라, 말의 방향과 온도였다. 가격으로 설명되는 세계, 물건을 통해 확인되는 위치, 모른다는 사실을 지적받으며 생기는 작은 균열들. 그것들은 어느 날 갑자기 큰 틈을 만들지 않지만, 꾸준히 같은 자리를 건드린다. 그리고 그 반복이 관계를 천천히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녀의 행복을 바란다. 그녀가 오래 고단했던 삶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편해졌다면, 그 사실 자체는 축하받아 마땅하다. 다만 나는 이제 예전처럼 편하게 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려한다. 우리가 같은 속도로 걷고 있다고 착각하던 시절이 지나고, 각자의 속도와 방향이 다르게 흩어지고 있다는 것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멀어짊이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 삶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말 몇 마디가 그 흐름을 더 분명히 드러냈을뿐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을 뿐, 어쩌면 이것이 관계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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