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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생일을 함께하며

by 수미

미처 챙기지 못한 친구의 생일을 뒤늦게라도 기념하기 위해 팔공산으로 향합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해가 바뀌어 만나도 어색함 없이 스며드는 사이가 있다는 것, 나이 들수록 그런 인연이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밥 짓는 일을 도맡아 살아온 우리는 누가 차려주는 밥상이 가장 맛있다는 말을 농담처럼 나눕니다. 생일을 핑계 삼아 찾은 식당에서 따뜻한 한 끼를 마주하고 있으니, 오랜 삶의 무게가 잠시 벗겨지는 듯합니다. 12월의 초입이지만 햇살은 봄날처럼 가볍습니다. 두꺼운 코트를 팔에 걸치고 산길을 지나 도착한 작은 책방은 누군가의 아지트처럼 고요합니다.

살며시 문을 여니 맑은 풍경소리가 공간을 채웁니다. 바람의 결만큼이나 고요한 공간이 펼쳐집니다. 붉은 히비스커스와 신맛, 단맛 품은 노란 유자차를 앞에 두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건네다 보니 한시간이나 흘렀습니다.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일상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책방을 나섭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숲속의 오후,

내 청춘을 기억해주는 친구와 나눈 짧은 휴식이 오래 마음에 남을듯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화려함보다 이런 소소한 여백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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