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대 영문과에 지원하려니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요했다.
요즘은 집에서도 바로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개명을 한 뒤라 졸업장에 남아 있는 이름과 지금의 이름이 달랐기 때문이다..
온라인 발급은 막혔고, 예전에 다녔던 고등학교에 개명 사실을 확인해 달라는 내용을 남겨야 했다. 기록상 이름을 바꾸는 절차가 먼저 필요했지만 담당자가 출장 중이라 며칠을 기다려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사이 나는 멈춰서게 됐다.
졸업장 하나를 출력하는 데 며칠이 걸리다니.
지금 이 나이에, 나는 왜 고등학교 졸업장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지.
어리고 머리가 잘 돌아가던 시절,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면 되었을 일들을 왜 그때는 하지 않았는지. 늘 한 박자 늦게 시작해 온 삶이, 이런 식으로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지금 이 나이에 학교에 지원해 과연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4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아 지원서를 작성하면서도 마음은 편치않았다. 가족들에게도 나의 진학 계획을 말했다. 아이는 지금 정도의 영어 실력이면 사는 데 문제없다며, 화실 일에 바쁜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응이었고, 남편은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던 사람으로, 배움이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든다고 믿고 나의 진학을 격려해 주었다.
늦었다고 단정하기에는 미련이 많은 삶.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그 정도의 안도감으로 다시 시작해 보기로 한다.
내 삶을 선으로 그린다면 시원하게 뻗는 직선은 아닐 것이다.
가다 멈추고, 끊어진 선을 덧대어 여기까지 와버린 삶.
그 선이 내가 살아온 삶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