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만난 친구와는 늘 한 발짝 거리를 두게 된다.
어린 시절, 잴 것 없이 서로를 드러낸 채 맺은 인연은 시간이 흘러도 허물없이 이어지지만, 머리가 굵어져 만난 관계에는 계산이 앞서기 마련이다.
몇 해 전, 결혼과 양육을 어느 정도 지나 다시 사회로 나서려는 주부들이 모이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나는 이미 미술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오래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자리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몇몇과는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 중 한 사람이었던 이 친구는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온 사람처럼 보였고, 주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늘 한결같음이 있었다.
시간은 흘렀고 각자의 삶에 치여 자주 연락이 오고가지 않았지만, 간간이 안부를 묻는 사이로 남아 있었다. 간만에 만나도 낯설지 않았고, 아무 때나 통화를 해도 어제 본 사람처럼 편안했다. 살아온 결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의 나이도 비슷하니 자연히 고민도 닮아갔다. 아이들은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고, 우리는 갱년기를 통과하는 중이었다. 감정의 파도가 겹치며 아이들과의 충돌은 잦아졌다. 딸을 둔 나 역시 쉽지 않았지만, 아들을 둔 친구의 시간은 더 격렬해 보였다. 감정이 무너질 때면 전화가 왔고, 나는 그저 듣는 사람일 뿐이었다.가끔 커피 한 잔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별다른 말 없이 시간을 보냈다. 나 역시 바쁜 삶을 살고 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그 정도였다.
연말, 친구가 아이의 이름을 물었다. 몇 년을 친구라면서도 아이 이름은 끝자리만 불러왔던 터였고, 나 역시 친구의 아이들을 ‘큰 애’, ‘작은 애’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이름을 알려주자 잠시 뒤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연말 절에 들러 새해를 맞이할 초를 올리며, 자기 식구들 초와 함께 우리 아이를 위해서도 초를 올렸다는 내용이었다. 내 아이를 위한 초 아래에는 건강과 심신 안정을 기원한다는 문구가 있었다. ‘심신 안정’이라는 말에 웃음이 터졌고, 동시에 친구의 마음씀이 고마워 마음이 찡했다.
소소하게 서로를 살피는 마음, 그 마음이 사는 일을 덜 고단하게 만든다.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눈빛, 누군가를 이해해 보려는 태도, 공감하려는 손짓 이런것들을 나눌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만으로 팍팍한 현실에 숨통을 트게 만든다.
한 해의 끝자락이 쌀쌀하지만은 않다. 완벽하진 않지만 쓸모없게 살지 않았다는 느낌, 대단한 사랑을 베푼 것도 아니고, 자랑할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다. 다만 약간의 시간을 내어 진심으로 들었고, 차 한 잔을 함께 했을 뿐이다. 그 사소한 오고감들이 삶을 계속 살만하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