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을 무엇보다 중요한 능력으로 말하는 시대라지만, 정작 학교에서 미술 수업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물통과 색색의 파레트 젖은 붓을 휘두르며 그리던 수채화 시간, 한 번 그리기라도 하면 소매에 먹물 잔뜩 묻어 엄마에게 한소리 듣던 한국화 수업의 풍경은 이제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교육 현장에서 미술은 자꾸만 뒤로 밀립니다.
출산률 저하로 아이 수는 줄었다고 하지만, 한 명의 교사가 감당해야 교실일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미술실이 없는 학교라면 교실에서 책을 치우고 재료를 꺼내고 청소를 하고 다시 원상태의 교실로 되돌리는 일은 여간 번거롭지 않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화실을 열기 전 잠시 방과 후 미술 강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미술실이 따로 없는 학교라 영어 교실을 빌려 신문지를 깔고 아이들에게 교실을 더럽히면 안된다 신신당부하며 수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을 뜨러 가다 복도에 흘리기라도 하거나 아이가 사용하던 물감이 바닥에 묻어 자국이라도 남으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강사인 저에게 돌아왔습니다. 수업시간보다 수업 후 청소하는 일이 더 스트레스였던 시간들이였습니다. 결국 간단한 키트와 반제품, 사용이 쉬운 재료만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고 아이들의 작품은 창의력을 드러내기보다 결과만 그럴듯한 작품으로 쌓여갔습니다. 인기있는 방과 후 강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지만 결국에 이런 이유로 수업에 회의를 느끼고 그만두기로 결심 후, 제 화실을 열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놀랐던 점은 초등 3학년이 되면 영어 과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미술은 우선순위에서 빠진다는 사실입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초등 6학년까지는 당연히 이어지는 과목이었는데, 지금은 초등 2학년이 지나면 ‘그만둬도 되는 수업’으로 여겨집니다.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이 대부분을 맡게 되면서, 여유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은 미술의 목적을 충분히 누리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미술이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창의력, 상상력, 표현력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정작 그 바탕이 되는 예술 교육의 자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인재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점수를 위한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현실. 작은 화실을 운영하는 제 눈에는 이 괴리가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요즘입니다
부모가 성적을 걱정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 한국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습니다. 규칙을 지키며, 사회 안에서 온전한 존재로 자리 잡고 인정받으며 살길 바라는 마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자신의 감각을 믿는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수없는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미술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단순한 ‘부족함’이 아닙니다. 아이가 스스로 세계를 느끼고 해석하는 힘, 비교 대상 없이 자신만의 속도로 집중하는 경험, 실패를 겪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 같은 것들이 함께 사라집니다. 창의력은 기술처럼 단번에 배우는 능력이 아니라, 이런 느리고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에서 길러집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작은 화실에서 아이들이 만든 색색가지 흔적들을 바라봅니다.
비슷해 보이는 그림 한 장 속에도 서로 다른 손놀림과 마음의 결이 있고, 그 차이가 아이의 미래를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 가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