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화실을 다시 시작하며 놀란 점은 아빠들의 등장입니다.
양육은 오롯이 여자 몫이라 여기던 시절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젊은 날을 보낸 저로서는, 중년이 되어 다시 찾은 한국에서 적극적인 아빠들의 모습을 보는 일이 새로웠습니다.
아이에게 맞는 미술 학원을 찾기 위해 직접 전화 문의를 하는 아빠
아이와 손을 잡고 학원에 들어와 이것저것 세심하게 묻는 아빠
부부가 함께 상담을 와서도 엄마보다 먼저 나서 꼼꼼히 살피는 아빠
아이를 데려다주고, 끝나면 다시 데리러 오는 아빠
아침에 출근해 밤에야 들어오는 사람이 ‘아빠’라 믿고 자란 제게, 이런 풍경은 참 낯설고도 그런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저로서는 부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완전히 뒤집힌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아이의 교육과 돌봄을 전담하는 건 대부분 엄마입니다.
아이의 학원 픽업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하루 일정을 쪼개고, 혹여 제시간에 데려가지 못하면 몇 차례나 미안함을 전하며 전전긍긍하는 엄마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가끔은 할머니가 대신 아이를 봐주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 할머니들 또한 자식의 육아까지 떠맡기보다는 자신의 남은 삶을 즐기려는 분들이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그렇다 보니 결국 아이를 위해 일하고, 집안일을 하고, 돌봄까지 감당해야 하는 건 언제나 엄마입니다.
며칠 전, 한 어머니에게서 장문의 메시지가 왔습니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오늘은 아이를 데리고 일터에 가야 해요. 그래서 수업 참여가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또 다른 날엔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아 아이 픽업이 조금 늦습니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라는 전화가 오기도 합니다.
괜찮다며 천천히 오시라 했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 엄마의 발 동동 구르는 소리에 제 마음도 덩달아 조급해집니다.
일하며 아이를 키워본 엄마로서,
그 마음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지며 그 엄마에 대한 연민이 불꽃에 기름을 붓듯
화르르 일어나기도 합니다.
모성애란 건 대체 무엇인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그 이유만으로
모든 무게를 엄마 혼자 짊어져야 하는 건지.
세상이 변하고 달라졌다 해도, 아직 갈 길은 멉니다.
일하며, 집안을 돌보며, 또 아이를 키워내느라 오늘을 아등바등 살아내는 엄마들에게,
그 길을 걷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살포시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