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실을 열며 가장 먼저 신경 쓴 곳은 의외로 화장실이었다.
초등학교 앞이라는 입지 조건 말고는 낡고 오래된 건물이라 손볼 데가 많았지만, 나는 공사비가 늘어나는 와중에도 화장실수리만큼은 집요하게 요구했다. 거미줄 낀 창과 싸늘한 샤시, 수십 년은 그대로 써온 듯한 그곳은 어른인 나조차 들어가기 망설여졌다. 아이들이 저 공간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쓰였다.
나는 식당이나 카페를 가도 화장실부터 살핀다. 깨끗한 수건, 은은한 향, 정성스러운 손길이 느껴지면 그 공간 전체가 믿음직해진다.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곳까지 세심히 가꾼 흔적에서 주인의 마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화실의 화장실은 언제나 가장 먼저, 가장 정성껏 손본다. “제가 제일 아끼는 공간이 화장실이에요”라며 부모님들께 농담처럼 말하는 것도 진심 섞인 너스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낼 때도 나는 강사진보다 화장실 위치부터 물었다. 멀거나 지저분하면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선뜻 등록하기가 망설여졌다. 어른은 불편해도 참지만, 아이는 다르다. 나는 어린 시절 푸세식 화장실이 두려웠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아이들에게 그런 공포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화실을 연 뒤 알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수업하다 화장실을 한 번은 찾는다는 것. 처음엔 지루해서 그런가 했지만 아니었다. 정말로 화장실이 편했던 거다. 집에서는 힘들었던 아이가 화실만 오면 시원하게 해결하고, 학교보다 깨끗하다며 일부러 들르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그래, 화실에서 마음껏 싸라. 이 작은 공간이 편하다면, 너희 마음도 열 수 있을 테니.
화장실은 은밀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자리다. 그곳이 편해야 마음이 놓인다. 잘 보이지 않는다고 소홀히 하면 삶의 다른 부분도 대충 넘기게 마련이다. 섬세한 부분까지 돌보는 태도는 맑고 예민한 아이들에게 곧장 전해진다. 화장실을 정성껏 가꾸는 일은 곧 내 화실을 운영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물을 뿌리고, 비누칠을 하고, 구석구석 닦는다. 작은 인형을 올려두고, 내가 그린 그림도 붙여둔다. 은은한 디퓨저 향을 풍기며 아이들을 기다린다. 아이들이 편안히 드나드는 이 화장실, 그곳이 내 화실의 가장 자랑스러운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