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 태도

by 수미

아침,

눈 뜨기도 전 바닥을 더듬으며 스마트폰을 찾는다.

밤새 올라온 SNS를 확인하는 일이 어느새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화실을 운영하다 보니 화면에는 동종업계 강사들의 수업 결과물, 요즘 미술계의 유행으로 피드는 가득 찬다. 어떤 강사는 아이들의 성장을 드라마틱 하게 이끌어내는 듯 보이고, 어떤 이는 재료와 연출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시회를 열어 ‘꼬마 작가’를 만들어내는 극적인 피드를 보고 있으면 비교의 마음이 불뚝 올라온다.

‘나는 왜 저런 순간을 만들지 못할까.’

오랜 시간 아이들과 그림을 그려왔지만, 나는 분위기를 단번에 뒤집는 연출을 만들지 못한다. 누구의 손을 잡아 단숨에 ‘꼬마 작가’로 변모시키는 능력도 없다.

그럼에도 이 일을 오래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라면, 기술보다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교육을 찾는 이유는 다양해도, 양육자가 살피는 기준은 비슷하다.

‘내 아이를 존중하는가.’

‘엉뚱한 말과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는가.’

‘맡길 만한 사람인가.’

이 기준은 경력이나 스펙보다 훨씬 신중하다.

나 역시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으로 이런 양육자들의 마음을 공감하기에 수업 중에는 아이와 눈을 맞추고, 사소하게 들릴 말도 끝까지 들어보려 노력한다. 아이의 마음이 어디에 머무는지 살피고, 그 힘을 긍정적으로 수업에 사용할 수 있게 유도하려 애쓴다. 말이 많은 아이에게는 충분히 말할 시간을 준 뒤 작업에 집중하게 하고, 말이 없는 아이에게는 선택지를 좁힌 질문을 건넨다. 말이 많은 것도, 입을 닫아버리는 것도 모두 불안을 줄이기 위한 아이의 방어적 태도임을 알기에 나의 이런 수업 방식은 몇 주가 지나면 아이가 끊임없는 말 대신 작업에 집중하는 순간을, 입술 한 번 떼지 않는 아이는 고개를 들고 단어 하나라도 꺼내보는 순간을 가지게 만든다.

물론 이런 이상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일은 어렵다. 나도 감정이 깊은 사람인지라 몸이 좋지 않은 날에는 말투가 예민해지고, 예의를 넘는 행동을 보면 속이 금세 들끓는다. 수업 중 바닥에 드러눕거나, 다른 아이의 그림에 장난을 치거나, 좁은 화실을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면 큰 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도 열두 번씩 올라온다.

하지만 감정이 아닌 사실에 집중해 아이가 공간과 상황에 맞게 행동하도록 돕는 것이 강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수업료를 지불하고 아이를 맡긴 양육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기도 하다.

진솔한 태도는 시간이 쌓이면 상대에게 전해짐을 믿는다.

목례만 나누던 학부모가 몇 해 뒤 시골에서 가져온 과일을 들고 집을 찾아오기도 하고, 화실을 지나던 길이라며 차 한 잔을 두고 간 학부모의 따스함에 노곤한 하루가 풀리기도 한다. 수업 뒤 보내는 사진과 짧은 피드백에 정성스레 답장을 보내오는 이들은 내가 이 일을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이런 순간들은 눈에 보이는 성과는 아니지만, 마음이 닿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업료가 입금될 때마다 짧게라도 감사 인사를 보낸다. 형식일지라도, 나를 선택한 마음에 응답하고 싶다.

나는 잘나가는 강사는 아니다.

당신의 아이를 단숨에 ‘금손’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아이의 느림을 견디는 태도,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 시간을 함께 누리려는 태도.

그것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고, 양육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다.

최근 이런 태도의 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아이가 있다.

그림을 싫어한다며 찾아온 아이, 첫날부터 “나는 미술이 제일 싫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학부모와 나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기도 했다. 몇 주 동안은 금방 그만둘 거라며 귀여운 협박을 하기도 했다. 이후 아이와 몇 번의 수업을 한 뒤 아이의 거부감이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예전 학원에서 장난을 치다 여러 번 혼난 뒤, 미술은 ‘잘못하면 혼나는 공간’으로 굳어져 있었다.

나는 아이가 다른 아이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동적인 작업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다. 꾸준히 한 작품을 완성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몇 달 뒤, 아이는 수업에서 가장 오래 집중하는 학생이 되었고(물론 가끔은 아니지만) 완성한 결과물을 자랑스러워하며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학부모는 아이의 이런 태도 변화에 고마움을 전하기도 한다.

나는 그 변화가 ‘재능’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느린 축적.

그것이 내가 양육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다.

화실을 운영함에 있어서도, 삶을 이어가는 데 있어서도

나는 결과보다 태도를 믿는 마음으로 하루를 이어나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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