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by 수미

나는 말을 많이 하고, 그만큼 빠르다. 어릴적하교 후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 엄마를 부르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쉼 없이 늘어놓았다. 엄마는 “쫑알이가 왔다”고 입으로는 시끄럽다 했지만, 눈은 늘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사춘기가 시작되며 입을 다물었다. 그 시기 미대진학을 꿈꾸던 나는 고흐에 관한 책만 읽었다. 그리고 입도 더 굳게 닫혔다. 이후 대학에 가고 아르바이트로 미술과외를 시작하며 다시 입이 터졌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한 과외는 내 태도를 어릴적 쫑알이로 돌려놓았다.


그 시절의 나는 늘 서툴렀다. 수업계획을 묻는 학부모의 질문에 어버버대며 아무말이나 내뱉다 눈앞까지 떨어진 과외자리를 놓친적도 있었고, 학생들을 다루는 데 미숙해 수업을 그만두게 된 적도 있었다. 한 번은 학부모가 아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해서, 정말 솔직하게 내가 느낀 감정을 쏟아냈다가 바로 잘린 적도 있다.


말이 빨라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방문과외를 하던 시절, 한 집 수업이 끝나면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다음 집으로 이동했다. 이동 시간은 십분.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했다. 그렇게 해야 한 집이라도 더 수업할 수 있었고, 그만큼 돈을 벌 수 있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내가 감당해야 했다. 그 시절, 말이 너무 빠르다는 지적을 받았고 내 속사포같은 말속도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속도는 성격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친 지 30년이 되어간다.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을 붙잡고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여전히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면 나는 바로 입을 닫는다. 집에 돌아오면 모든 소음을 줄인다. 지금은 남편과 아이가 음악을 틀면 슬며시 문을 닫거나 볼륨을 줄여 달라고 부탁한다. 작업실에 앉아 눈을 감고 아무 소리도 듣지 않기도 한다. 고요함이 필요하다. 그 고요가 있어야 다시 수업 시간에 말을 할 수 있다.


말 많은 성향은 일상으로도 흘러들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직업병처럼 말이 쏟아졌다. 사람과의 어색한 공기 흐름이 싫어 뭔가를 말하다가 어느새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쏟아내고, 집에 돌아와 이불을 차며 후회한 적도 많다. 그러다보니 나이가 들어가며 사람을 피하게된다. 누군가를 만나면 또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다.


수업외에 인간관계는 멀리하지만 몇 년전부터 독서를 매개로 한 모임은 찾아 나간다. 책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건 쓸데없는 말이 아니다. 말이 책 안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나는 화가 날 때도 책을 읽는다. 아이와 다투거나 남편과 말이 엇갈릴 때도 그렇다. 감정을 풀기 위해서라기보다, 함부로 말을 뱉지 않기 위해서다. 책은 그때마다 내가 선택한 안전한 거리였다.


책은 서두르지 않는다. 내가 펼칠 때까지 기다린다. 당장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말을 너무 많이 써 온 사람이, 스스로를 멈추기 위해 택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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