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지 않을까

by 수미

구정 연휴를 집에서 보낸다.

귀성객들로 도로가 막힐까 싶어 어머니가 잠든 수목장에는 미리 다녀온 터라,

남은 연휴는 집에서 한가롭게 뒹굴거리기만 하면 된다.

나가야 할 이유도, 꼭 해야 할 일도 없는데

이렇게 방구석을 굴러다니기만 해도 되나 싶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화실로 옮긴다.


아이들 앞치마와 팔토시, 수건을 챙겨 빨고

연휴 동안 화실 청소도 제대로 해두자는 생각이다.

휴일의 화실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해야 할 일들은 머릿속에 가득한데

엉덩이는 의자에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노트북을 켜고 한동안 아무 사이트나 들락거린다.

이럴 바엔 아이들 수업 준비나 하자 싶어

작품 아이디어를 떠올려 본다.

미리 사두었던 트럼프 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유치부나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잘 그리기 위한 기법보다는

지루함을 싫어하고 새로움에 바로 반응하는

흥미 유발 재료들에 더 눈이 간다.

트럼프 카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팝아트와 엮어볼까 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미지도 떠올려본다.

너무 익숙한 이미지 같아 다시 손을 놓는다.

그러다 마음 가는 대로 이런저런 스케치를 하다

지금의 그림이 완성된다.


욕조 안, 따뜻한 물속에서 졸고 있는 토끼.

문밖에서 살포시 바라보는 아이.

이거, 꽤 마음에 든다.

자꾸만 시선이 간다.

그러다 문득 그림 속 장면이 낯설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다.

떠오르는 대로 문장을 적어본다.

이제 꿈에서 깨어날 시간.

한글로 써두면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

글 대신 이미지처럼 보이길 바라며

영어 문장으로 갈겨 쓴다.

Time to wake up from the dream.

그렇게 완성된 작업이

왜 이렇게 나 같은지.


올해로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이 된다.

가족들과 이젠 엄마 기일에만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구정과 추석에는

엄마가 잠들어 있는 수목장에 들르기로 했다.

명절만 되면 급등하는 물가,

해놓아도 먹지 않는 차례 음식들,

멀리서 고생하며 내려오는 가족들까지 떠올리면

이성적으로는 맞는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마음이 쓰인다.

우리 엄마, 배고프지 않을까.

다른 집들은 다 차례를 지내는데

우리 엄마 혼자 배고프지 않을까.

내가 너무 냉정한 건 아닐까.

이미 떠난 사람에게

아직도 이런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 품고 화실에 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걸

완성된 작업을 보고서야 알아차린다.


엄마는 이미 잠들어 있는데

놓아주지 못하는 쪽은 나인건가.

그림 속 아이는

편히 잠든 존재를 깨우지 않으면서도

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억억거리며 우는 애도도 없다.

슬픔을 드러내고 싶지도 않다.

다만 무한한 사랑을 주었던 사람을

아이처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엄마는 편히 잠들었는데

나는 아직 문 앞을 서성인다.

예쁜 우리 엄마,

배고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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