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저 공짜라 좋았다. 궁금한 것을 묻고, 영어 문장을 찾고, 막힌 표현을 고치는 보조도구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습관이 됐다.
수업 준비를 하다 막히면 창을 하나 켜 두고 묻는다. 새벽까지 계획안을 붙들고 씨름하던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끝난다. 혼자 끙끙대던 시간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구독을 했다. 카드 번호를 입력하면서 잠깐 망설였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다 결제 버튼을 눌렀다. 시간을 사는 값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달 카드 알람이 울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걸린다. 편해진 만큼, 스스로 오래 고민하던 힘이 사라지진 않을까?
영어 그림책 수업을 준비할 때도 그렇다. 예전에는 며칠씩 책장을 넘기며 장면을 고르고 단어를 골랐다. 지금은 아이들 나이를 적고 몇 가지 조건을 넣으면 놀이 방법과 활동 아이디어가 정리되어 돌아온다.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방식까지 담겨 있다. 이런 편안함에 만족하다가도 한편으론 허무하다. 대충 적은 메모가 그럴듯한 계획안이 되어 화면에 뜰 때, 반갑기도 하고 내 자리가 살짝 줄어든 기분이 든다.
어떤 날은 사춘기 아이와 다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러면 AI는 내 친구가 되어 말을 건네고, 엉망진창 같은 상황을 차분히 정리까지 해 준다. 위로를 받으면서도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든다. 내가 가르치는 그림도 언젠가 더 잘 가르치는 존재가 되어 나타나는 건 아닐까. 유화, 아크릴, 수채화, 데생까지 전부 알고, 공감도 능숙한 스승이 생긴다면 나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 그런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무서웠던 건 기계가 아니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닌 그것을 쥐는 사람이라는 걸 우리는 이미 여러 번 겪어왔다. 그래서 나는 AI보다 인간의 욕심이 더 두렵다. 자신이 가진 힘을 마음대로 휘둘러 권력과 부를 독점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욕망이 무섭다.
나와 남편은 노후에 이루고 싶은 작은 꿈이 있다.
요즘 남편은 하루 일을 마치고 코인 노래방에서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부른다. 그 시간이 이 사람에게는 하루를 달린 스스로를 달래는 보상처럼 보인다. 언젠가는 직접 만든 음악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게 남편 노후의 꿈이다. 나 또한 그렇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화실 일도 좋지만 조금은 줄이고 싶다. 밤새 책을 읽고, 물감을 마음껏 펼쳐 놓고, 치울 걱정 없는 작은 방에서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아무도 읽지 않아도 괜찮은 글을 천천히 써 보고 싶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지금의 중년을 버티며 채우고 있다. 돈을 벌고, 일을 하고, 구독료 알람을 확인하면서도 언젠가 올 시간을 상상한다.
일이 끝난 밤,
노래를 부르고 돌아온 남편이 푹 꺼진 쇼파에 기대 음악을 듣고
나는 물감이 널부러진 작은 책상 위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만 바스락 내고 있는 날.
미래에는 그 정도의 하루면 충분하지 않을까.
기계보다 사람이 조금 덜 조급한, 그런 시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