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중

by 수미

경중을 따질 일이 아니었다.

경중을 따져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사람과 돈의 무게를 재는 일은 세상 어리석은 일임을 바닥을 보고서야 감지했다.

쫙!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온 남편이 샤워하러 들어간 욕실에서 찰진 소리가 들렸다. 남편을 부르며 괜찮냐 물어보려는 찰나 내리치는 샤워기 물밑에서 자신의 뺨을 때리는 남편을 보았다. 남편은 갑자기 욕실로 뛰어든 나를 보고도 놀라는 기미도 없이 고개를 떨구고 그대로 앉아있기만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며칠 밤샘 작업을 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의 주먹에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벽에 주먹을 내리친 듯 까져있는 손등을 보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짜증은 늘었으며 늙어가는 모습이 눈으로 확인될 만큼 힘이 빠져 있었다.

아이를 놓고 좋은 조건의 새 직장으로 출근한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올 수 있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큰돈을 받았고, 한 푼 없이 시작한 살림을 조금씩 늘여 그럴듯한 삶을 살아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의 살림이 늘어나고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좋아질수록 남편의 말수는 줄었고, 짜증은 늘어났으며, 끊었던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밤마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 들 수 없게 되었다. 직장 생활이라고는 졸업 후 유치원에 잠시 일한 게 다였던 나는 남편이 회사 생활에서 힘겨움을 말할 때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러게 당신이 일을 제대로 했으면 상사가 그러지 않겠지, 모든 직장이 다 그렇다, 왜 당신만 유별나게 그러냐는 듯 남편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남편이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순간이 되자 두려워졌다. 말문을 닫은 남편의 마음을 지금 당장 들여다봐야 함을 직감했다.

굳게 닫은 남편의 입을 떼게 하는 데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나의 모든 질문에 날선 말로 대꾸하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며 당신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는 말이 혀끝까지 차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의 속마음을, 상태를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 급선무이기에 나의 모든 감정을 누르기로 했다. 어렵사리 입을 뗀 남편의 이야기는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상사가 던진 재떨이를 피했던 일, 멱살을 잡혔던 일, 정리해간 서류를 던져버리는 일은 수시로 벌어졌으며, 함께 하는 식사시간에 내뱉는 끝이 없는 욕설, 주말이고 새벽이고 상관없이 돌아가는 공장에서 수시로 뛰쳐나가 일해야 했던 휴가도 없이 보낸 몇 년간의 시간을 토로하는 남편이 애처롭고, 당연히 가장이 해야 할 일이라며 치부해 버린 나의 무심함에 한참을 울었다.

선택해야 했다. 돈과 사람 사이에 선택을 해야 했다. 훤히 답이 있는 이 일에 나는 망설였다. 돈이 필요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이 좋았다. 누구 하나 희생해 남들처럼 살 수 있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온 머리를 채웠다. 입을 닫고, 술, 담배에 찌들어가는 남편의 몸뚱이를 눈앞에 보면서도 돈을 생각했다. 망설일 일이 아니었으나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남편의 건강은 더 나빠졌고 결국 심장의 무리로 수면 중 무호흡이 심해진 남편은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남편을 영원히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상황이 되어서야 나는 선택했다.

사직서를 냈다. 남들 눈에 좋아 보이던 집과 살림살이들을 처분하고 작고 오래된 집으로 이사했다.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일을 그만두었다. 전혀 즐기지 못하고 남들 눈에 있어 보여 시작한 골프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내 눈에 남편 눈에 좋아 보이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누리던 것들을 놓아버림은 쉽지 않다.

몸은 편한 것들, 좋아 보이는 것들에 약삭빠르게 길들여지나, 제 몸 고됨과 번거로운 것들, 보기에 그저 그런 것들로 돌아가는 것을 강렬히 부정한다. 어쩔 수 없이 후자에 길들여져야 함에 한 쪽 고개는 위로 빼고 예전의 것들을 그리며, 한때는 내가 말이지를 쉼 없이 되뇐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가 좋아 보이는 것들과, 우리가 행복이라 여기는 것들에 집중하자는 당찬 마음먹고 남편에게 사직서를 내라 했지만, 마주한 현실은 회사에서 내어주던 너른 집에서 작고 오래된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회사에서 내어 주던 좋은 차를 반납하고 뚜벅이 생활을 해야 했으며, 생각 않고 담기 바빴던 장바구니는 파 한 단, 마늘 한 쪽도 계산하며 치밀한 장 보기를 해야 했다. 예전 너르고 깨끗한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는 작고 허름한 유치원이 싫다며 예전 유치원으로 다시 보내달라 투정 부렸고, 야심 차게 사직서를 던졌던 남편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재취업에 한동안 소파에 박혀 한숨만 쉬는 시체놀이로 내 속을 뒤집었다.

주변인들은 몸은 고되지만 여러 혜택과 돈을 주는 회사를 그만둔 우리를 용기 있다 했다. 하지만 정작 현실은 용기가 아닌 다시 어떡해서라도 그 소굴로 들어가고 싶단 생각이 간절했다. 남편은 자신이 사라진 자리에 며칠 후 새로운 담당자를 구하며 잘만 돌아가는 예전 회사를 보았다. 진정 하찮은 소모품에 불과했던 자신이었음을 확인하자 다시는 기어 나오지 않을 듯 소파 속으로 박히기만 했다.

우리의 선택이 후회 없다는 듯 위장하며 또다시 남의 눈을 의식하고 있는 나 자신이 질렸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과 갑자기 떨어질 행운을 멍하니 기다렸다. 그 와중 회사를 관두면 나아질 줄 알았던 남편 몸은 몇 달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뒤늦게 밝혀진 병명은 협심증, 천만다행으로 며칠 입원하여 받는 시술로 치료가 가능했으나 하마터면 이유도 모른 체 한순간 남편을 잃을 수도 있었다는 의사 말은 더 이상 일어나지도 않을 대박을 기다리며 괜찮은 척하는 사는 일을 관두게 했다.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던 남편은 술을 줄이며 체중관리에 들어갔고, 담배를 피우면 더 심해질 수 있는 협심증은 금연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참에 남편에게 운동을 해 보라 권했다. 남편은 복싱을 택했다. 학창 시절부터 운동에 소질 있어 복싱을 원했던 남편은 주먹다짐이나 하며 살 수도 있다며 반대했던 부모님의 염려로 시도도 못 해본 게 후회된다 했다. 선수로 꿈을 펼칠 수 있는 나이는 한참 지났지만 소원이던 복싱을 한 번 해 보고 싶다 했다. 하필이면 때리고 맞는 운동을 택하냐며 비아냥 거리는 나에 반해 남편은 복싱에 진심이었다. 이후 남편은 작은 회사에 취직을 했고 피할 수 없는 야근과 시간 외 일들이 넘쳐나는 새 회사에서도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 복싱을 했다. 그렇게 7년 동안 남편이 유지한 절주와 금연, 복싱 사랑은 경쟁률 높다는 환경 공무직 1차 체력 테스트를 가뿐히 넘기는 행운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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