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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Mar 10. 2022

엄마의 안부를 묻는다.

2장 부정

하늘길을 오르는 일이 순탄치 않은 지금, 투병 중인  엄마와의 화상 통화는 내 하루의 루틴이 되었다. 살 갑지 않은 성격에 집에서 나가면 연락되지 않는 딸로  무심히 살아왔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줄로 알고 살아왔고 일주일 한 번 정도의 짧은 통화가 부모님과 나의  대화 전부였다. 조금이라도 말을 이으려는 엄마의 말꼬리를 자르고, 다른 할 일이 많다는 듯 건성으로 대 답하는 딸 눈치 보느라 그나마 연결된 통화도 엄마는  서둘러 끊으셨다.  


갑작스레 전해진 엄마의 병은 흩어진 우리 가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삼 형제인 우리는 겁 많고 여 린 언니를 필두로 유독 엄마에게 무뚝뚝한 나를 중간 에 끼운 후 나보다 더 무뚝뚝한 동생이 합쳐져 엄마 를 살리는 일에 독수리 삼 형제처럼 뭉쳤다.  목소리 한 번 듣기 힘든 동생은 엄마의 병환을 제일  먼저 알았다. 의사에게 엄마의 상태를 듣고도 엄마가  놀라지 않게 차분히 말하려 했으나, 가슴에서 치미는  슬픔은 감춰지지 않았다. 엄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막내아들의 얼 굴에서 바로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눈치챘다고  했다. 


급성 백혈병 판정을 받은 엄마는 두 달이라는  시한부를 선고받고, 전화 목록부터 지우셨다 한다. 그리고 들고 있던 통장의 비밀번호를 언니에게 알렸다.  엄마는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로 결심한 사람 같았다. 우리는 엄마를 살려야 했다. 자기 몸 썩어 들어가는지  모르고 우리 셋 멀쩡히 키워낸 엄마를 이리 급히 보내는 건 억울했다. 


대화 같은 대화를 해본 적도 없다.  많이 안아 주지도 못했다. 그동안 받은 과분한 사랑에  만 분의 일도, 천만 분의 일도 갚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딸 눈치 보며 수화기 너머 안부를 묻던 엄마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 일이었다. 이리저 리 꽂은 바늘과 튜브에 겨우 나오는 목소리로 침대에  몸을 기대 말하는 엄마에게 웃는 얼굴로 나의 일상을  떠벌린다. 마무리는 더도 덜도 말고 내가 한국 갈 때 까지만 살아있으라는 신신당부를 하고 파이팅!이라 는 구호로 통화를 마친다.  


두 달이 남았다던 엄마의 삶은 천만다행히 다시 한 번 살아보겠다는 엄마의 투지와 머리가 다 빠져버린  모진 항암치료가 효과를 보이며 몇 년만 더 살게 해  달라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는 듯했다. 엄마의 몸이  예전처럼 나아지는 듯 보이자 두 달이란 시간이 석  달이 되고 석 달이 여섯 달을 넘겼다. 일 년만 더 살 게 해 달라는 나의 기도를 오 년으로 다시 십 년으로,  또다시 백 살까지로 바꾸어 놓을 만큼 엄마는 원래의  엄마로 돌아오는 듯했다.  오늘도 엄마에게 전화를 할 것이다. 시끄럽다며 끊으 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조잘 될 것이다. 시시콜콜 옆 집 아줌마네 강아지가 한 짓까지 이를 것이다. 엄마가  웃으며 그만 쫑알거리라고 손사래 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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