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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Mar 10. 2022

하루 두세 번 전화를 한다

2장 부정

이곳이 여덟시니 그곳은 열시겠다. 

아마도 힘겹게  냉장고 문을 열어 언니가 미리 해 두고 간 음식들을  데워 밥 한 공기 떠서 아침을 드셨겠다. 그대로 퍼져  있고 싶지만 깔끔한 성격에 남은 기운 내어 먹은 그 릇들 물에 불려 둔 뒤 나들이용 옷을 걸쳐 입고 모자 를 썼겠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 숨짓겠지만, 이내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손녀들이 사준 고운 꽃 모양 달린 회색 모자를 쓴다면 아무도 당신의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있다는 걸  모를 거다.  독하고 모진 약들에 그나마 단단하던 근육들은 사라지고, 피부는 다 타버렸다. 더운 날 모기 때문에 고 생할까 어찌 지내냐 여쭸더니, 한여름 극성이던 모기 조차 당신 피가 더러워진 걸 아는지 물지 않으신다며  허허 웃는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숨이 차지만 그래 도 당신은 성모당을 매일 찾아간다. 참 다행이다. 몇  해 전 이사 온 이 동네는 어쩜 그리 나무가 많은지. 아파트 입구에서 몇 걸음만 내디디면 만나는 성당과 수녀원과 성모당은 당신의 노곤한 삶에 평안을 주는 유일한 장소가 되었다. 


당신을 보는 것은 녹아내리는 촛불을 바라보는 듯하 다. 카랑카랑하던 목소리 웅얼거림으로 바뀌고, 초롱 초롱하던 눈망울은 자꾸 먼 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 간이 늘어나다. 살 수 있다. 살아야지. 살 거라 다짐하던 단단한 마음은 물렁해지고, 어제는 젊은 날들 사진을 다 찢어 버렸다는 당신 말에 나는 괜히 역정을 낸다.


전화를 해 본다. 화면 속 당신은 하루도 빠짐없이 가던 성모당 가는  일도 이젠 힘들다 한다. 다니는 게 힘드시면 티브이라 도 좀 보시라는 말에 희미하게 웃어 보인다. 남에게  신세 지는 일은 죽어도 아니하신다며 아들 댁에도 가지 않으신다. 며느리 집에 오면 남의 집 귀한 딸 손에  물 묻히면 안 된다며 당신이 상 차리고 설거지하셨으 니 이젠 좀 대접받으셔도 된다 해도 당신은 내 집이  편하다며, 힘든 끼니 스스로 챙기시고 거친 숨 몰아쉰 다. 


며칠 있음 당신의 생신이다. 칠순 잔치해야 하는 데 몸이 이래 못하겠다는 말에 내년에 병 다 낫고  란 듯이 생신잔치 열어주겠다는 사위 말에 또 한 번  희미하게 웃어 보인다. 그러다 멍하니... 그렇게 멍하 니 멈추어 한곳을 바라보는 당신 모습을 요즘 들어  자주 본다.  오늘도 오후 한나절 빈 방에 혼자 멍하니 계신 듯하 다. 세상이 멈춘 듯 말이다. 전화를 끊고 나도 당신 따라 멍하니 있어본다. 세상은 고요하다. 당신이 느끼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러다 심장에서 쥐가 난다. 당신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세상에 부디 희망만이  있길 바란다. 내가 그러하듯 당신도 그러길 간절히 바 란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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