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인의 일기

나는 ADHD라는 병에 갇힌 건 아닐까

by 한노랑

ADHD, 요새 언론이든 주변에서든 자주 들리는 단어다.

약품의 수급 문제로 인해서 더욱 더 수면 위로 끌어올려진 질병. 하지만 정의를 알고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ADHD는 주의력결핍(Attention Deficiency)/과잉행동 (Hyperactivity) 장애(Disorder)이다. MSD 일반인용 매뉴얼에서는 이렇게 정의내리고 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는 주의집중범위가 부족하고/거나 소아의 연령에 부적절한 과다 행동 및 충동으로 기능 수행 또는 발달에 지장을 주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니까, ADHD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주의가 산만하거나,

과잉행동을 보이거나

둘 모두 보이거나.


나는 그래서, ADHD를 자폐와 같은 스펙트럼 장애라고 본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저런 증상이 경미하거나 단일하게 보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복합적이고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증상이 사회생활, 즉 학교 등의 공동체 생활에서 문제가 되거나 일상생활 영위에 지장이 가해질 정도라면 정신의학적으로 그것을 '장애(Disorder)'라고 보고 진단을 내리게 된다.

이는 우울증(Depression disorder)과 우울감(Depression mood)이 근본적으로는 같을 수 있으나 전혀 다른 카테고리임과 비슷하다.


유병률에 대해서는 문헌마다 많은 격차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5~15%의 소아에서 이러한 증상이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남아에서 2배 더 많이 발생한다고 추정한다. 물론 ADHD 증상 중 일부는 ADHD가 없는 아이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 당연하다, 그 나잇대 어린애들은 주의력이 부족하고, 과잉행동을 하는 것으로 모두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시선이 나를 길렀다.


나는 어려서부터 치마를 즐기지 않았다.

뛰어다니는 데 불편했고 속옷이 쉽게 노출되었으며 잘못하면 옷이 상했다. 활동성이 많은 나에게 부모님은 바지를 더 많이 입히셨고 나는 덩달아 더욱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내 머리 뒤통수에는 영원히 머리카락이 자라나지 않는 곳이 있고, 내 입술 안쪽에는 사라지지 않는 흉터가 있고 (점막의 회복이 엄청나게 빠르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점막에 흉터가 생기는 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양 무릎에는 켈로이드성 흉터가 가득하다.


남자아이들과 엄청 잘 싸우던 여자애기도 했다.

남자애들이 여자애들을 괴롭히는 걸 못 견뎌했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육탄전을 심심찮게 벌였다. 하필이면 내 성은 '한' 씨였고, 한씨 인간이라면 모두가 그렇듯 "야 한 OO"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분개해서는 되먹지 못한 남자애들을 쫓아가다가 걔들이 남자화장실로 도망가면 식식대면서 욕을 하곤 했다. 의외로 조폭마누라라는 이야기에는 짜증내지 않았다. 나처럼 활동적인 여자애한테는 그때 모두가 조폭마누라라고 했다.


나는 매우 폭력적이었고, 나만의 정의감에 사로잡혔으며, 정신산만한 여자애였다.

그 반의 누구보다 ADHD의 증상을 보였지만, 내 부모님도 선생님도 나를 정신과에 보낼 생각은 안 하셨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터다.


내 행동들은 점차로 무뎌져갔다.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시절은 거의 기억나는 것들이 없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은 그 때의 나는 학업에 있어 성취가 뒤떨어지지 않았다. 표준편차로 따지자면 5% 이내에 들어가거나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좋아해서 다독상도 여러 차례 받았다. 집중력에 딱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수없이 시간을 쏟았고 공부에 집중하는 것도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간호학과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직하며 성적을 적을 때마다 노력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늘 한다.)


하지만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나는 소위 '환타'였다. 마시는 음료수 말고, '환자를 탄다'고 할 때의 그 환타. 말하자면 일복이 터진 사람이라는 거다. 내가 근무를 시작하면 갑작스럽게 일이 발생하거나, 내가 한 실수에 내가 넘어지거나, 프리셉터가 실수를 발견해 미친듯이 혼나곤 했다. 배움은 더뎠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단순히 버티는 것뿐이었다. 나는 타지않는 장작이었다. 태움을 당하는데 태워지지 않는 사람을 보통 그렇게 부른다. 나는 그냥 눈치를 못 챘다. 원래 그만큼 혼나는 줄 알았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일을 배웠다.


내가 다닌 병원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곳이었다.

빅5라고 불리는 병원 중 서울 중심의, 공공의료노조가 있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역할이 명확히 나눠진 병원. 그리고 장애인 차별이 난무하는 병원이었다. 나는 그곳의 성인수술실에서 3년을 보내고 염증을 느꼈다. 내가 잘 못하기 때문에라기보다는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나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 2년차가 된 직후 생겨난 생각으로, 나도 뉴스에 나오는 '간호사로 일하며 수능 준비를 해서 치과의사가 된' 사람들처럼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포기는 빨랐다.

이상은 너무 높았고 나는 과학의 기초를 이해하는 데 내 모든 체력을 쏟았다. 나는 내게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을 나오게 된 계기였던 그 일을 포기했다. 그리고 병원을 나온 간호사들이 가장 쉽게 접하는 연구간호사 일을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그 병원의 신경과 교수의 연구간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팀장으로부터 "ADHD 진료를 받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내가 모르는 새 분야를 배우고 있었고, 불안과 긴장도가 매우 높아 실수를 하지 않으면서도 실수를 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팀장은 정신과적 질병에 솔직해져야 한다는 경험이 있었고, 나에게 진지하게 검진을 권유했다. 당시 나는 업무에 지쳐있었고(들어간 지 2개월도 안 되는 시점이었는데) 내 문제의 원인을 찾고 싶어 집 근처의 아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내가 ADHD라는 걸 발견했다.

콘서타 복용을 시작했고 나는 내 문제가 다 해결될 줄 알았다. 아주 큰 오산이었다.

더 큰 문제들은 그 이후부터 발생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의 외적인 곳에서 문제가 계속 생겼고, 나는 쫓기듯 이직을 반복했다. 나는 병원에서 나온 지난 3년간 3번 직무를 바꾸며 방황했다. 어쩌면 나에게 문제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나에게서 문제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성찰적인 인간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특징일지는 모르나, 나는 자주 나를 탓하고 죄송하단 얘기를 한다. 어쩌면 ADHD의 특성이 아닐까?


나는 내 삶을 ADHD라는 질병 내에 가두고 싶지 않다.

그래서 ADHD라는 질병과 특성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아가고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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