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에도 역사는 있다.
우스운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질병에도 역사는 있다.
질병은 자연적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을 진단하고 분류하고 설명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같은 증상도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과 다른 해석을 받고, 치료 방식과 사회적인 시선, 제도의 흐름마저 역사 속에서 변한다.
특히, 정신과적 질환처럼 낙인을 찍는 질환은 더더욱 그렇다.
히스테리(Hysteria)를 예로 들어볼까?
히스테리는 질병의 사회적, 그리고 성별적 낙인의 극단적인 사례이자, 진단과 치료가 사회적인 권력 구도 아래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질병이다.
히스테리,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 "히스테라", 즉 자궁이다. 19세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대중을 지배했을 당시, 여성의 불안, 우울, 감정 표현, 신체 증상 등을 '히스테리'라는 이름으로 통합하여 진단했다. 여성의 감정 과잉, 불안정성, 통제 불가능성을 질병으로 보고, '여자'라서, '자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질병이라고 판단했다.
역사적인 흐름에서 판단해 보자.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페미니즘 운동의 시작인 서프러제트가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로, 기존의 권력 구도였던 가부장적 질서에 순응하려 들지 않고 사회 규범에 저항하는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여성은 히스테리 진단을 받았다. 그러므로, 히스테리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낙인'이었다.
치료법은 뭐였을까?
간단하다. 문제를 일으키는 자궁을 없애는 자궁적출술(Hysterectomy)이다. 심한 경우에는 질과 외음부까지 도려냈다. 이는 현대의학에서 여성의 고통이나 감정을 병리화시킨 성차별적 의술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안의 모든 편견이 사라졌는가?
당장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말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짜증과 신경질을 일컫는 말로 유명했고, 여전히 히스테리라는 말은 우리 곁에 잔존한다.
히스테리가 여성에 대한 통제와 낙인의 도구였다면,
ADHD는 산만하고 충동적인 사람을 사회적으로 '결함 있는 존재'로 간주하게 만든 현대적 낙인이다.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졌다.
- 주의력결핍장애 (Attention Deficiency Disorder)
- 소아기 과잉운동 반응(Hyperkinetic Reaction of Childhood)
- 과잉운동 정서적 장애(Hyperkinetic Emotionally disturbed Childern)
- 미세 뇌기능장애(Minimal Brain Dysfuction)
- 과잉운동증(Hyperkinectic Disease)
최초의 명칭은 18세기 후반에 "주의산만(Mental restlessness)"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질환자는 그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지급처럼 명명되고, 진단되고, 치료되는 것은 아니지만. ADHD는 의학적 장애로 판단되기보다는 그저 문제아로 사회적 낙인을 찍거나, 수용소에 수감하는 등 부정적으로 훈육당했다.
ADHD가 제대로 정신의학에 편입되기 시작한 건 20세기 초로,
위에 말했던 '히스테리'처럼 정신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에 ADHD를 가진 아동들은 "도덕적인 통제에 비정상적인 결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이후에는 뇌 손상이 원인이리라고 추측되었다. 1917년부터 1918년까지 전세계적으로 뇌염이 유행했고, 이후 일부 아이들이 충동성과 과잉행동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메스암페타민이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었다.
강력한 중추신경 자극제인 메스암페타민은 당시 노동자, 주부들의 피로를 잊게 해 주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기적의 약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영을 가리지 않고 군인들에게 보급되었다. 일본군에게는 Hiropon(히로폰)이라는 이름으로 보급되었다. 맞다. 우리가 아는 그 필로폰이다.
메스암페타민은 화학적인 변화를 거듭해 메틸페니데이트가 되었다. 1955년 리탈린(Ritalin)이 시판되었고, 과잉행동증 치료제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10년 뒤에는 공식 진단 범주에 ADHD에 해당하는 증상이 포함되었다.
그로부터 또 10년 뒤, 미국 학급의 5~10%의 학생이 암페타민계 약물을 복용했다.
언론과 대중이 난리가 났다. 그런데 이것 또한 낙인이었던 게, 이 통계는 특수교육 대상 아동에 국한된 것이었다. 하지만 언론에 잘못된 보도가 퍼진 후, "ADHD가 과잉진단되고 있다", "각성제를 너무 쉽게 먹인다"는 우려가 발생했다. 심지어는 "가짜 병"이라는 주장까지 퍼졌다. 일반 대중은 "그게 병이냐, 산만한 애는 훈육으로 다스리면 된다" 식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쓰면서도 고통받고 있지만, 내가 아동이었을 때 ADHD에 대한 인식이 꼭 그랬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아니 지금도, 정신과적 질병은 인간의 결함으로 여겨진다. 쉬쉬하고 덮어야 할 문제로 인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당장 조현병만 해도, 아직도 정신분열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고, '가둬두고 못 나오게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바로 정신병 자체를 부인하는 한국인의 얼, 디나이얼이다. 본인이 정신질환자라는 것을 믿기 싫어서 더욱 더 발작적으로 튀어나온다.
내가 ADHD로 진단받은 후, 가족들에게 밝혔을 때 이런 얘기를 들었다.
너 꼭 그 약 먹어야 해? 너 그 정도는 아니잖아.
놀랍게도, 1988년 약대를 졸업하고 약국을 20년 넘게 운영하신 나의 모친의 발언이다. 조현병은 그렇게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할' 질병이라고 인식하면서도, 우울증과 ADHD 쯤이야 '대가리에 힘 좀 주면' 되는 병이라고 경시되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내 문제가 ADHD 때문이라고, 드디어 원인을 알았다고 생각해서 그럴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ADHD로 진단받았음을 떠벌리고 다녔다. 그런데 사회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내가 질환자이기 때문에 내 상사로부터 '쟤는... 안 돼.'라는 시선을 받았다. 직무가 맞지 않는다면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말도 들었다.
내 부모님도 날 이해하지 못했고, 사회적으로는 무시받았다.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내 기능은 점점 더 떨어졌다. 콘서타를 2년간 복용했음에도 내 주의력검사는 '심각' 수준이었고 (아마 스트레스로 기능이 최악이었을 것이다) 불안이 점점 심해져 알프라졸람을 처방받아 복용을 시작했었다. 아무리 머리에 힘을 줘도 뭐가 되질 않았다.
웃기게도 그 상사가 나보다 먼저 이 회사를 나갔지만.
대한민국에서 ADHD에 대한 개념은 반 세기 전 미국이랑 다를 바가 없다.
한국에서 ADHD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건 1980년대, 몇몇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해외 학회, 해외 문헌을 통해 이 개념을 국내에 들여왔고, 1990년대에 학계에서는 ADHD 관련 연구와 논문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인식은 아직 매우 낮아서, 그저 산만한 아이로 낙인찍는 경우가 많았다. 통합국민건강보험이 출범한 것이 2000년이므로, 당시엔 약값이 비싸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한 아동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리고 희대의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나타났다.
찾아보니, 첫 방영날이 2005년 7월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아동의 문제는 양육자의 문제에서 시발함을 알 것이다. 하지만 아동의 정신질환에 대해서 다루기 시작한 (내 기억상으로는) 첫 번째 대중 프로그램이었고, 이를 기점으로 ADHD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대폭 확장되었다. 공교롭게도 콘서타의 첫 국내 의료보험 적용 시기가 2005년 3월이다.
마침 질병의 인지도가 높아졌고, 마침 약물치료의 기회도 넓어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낙인이 시작되었다.
197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일이 한국에서 똑같이 발생했다. "ADHD는 질병이 아니다", "훈육으로 해결될 수 있다", "제약회사가 만든 병이다", 정말 어처구니 없지만 "설탕을 많이 먹어서 생기는 일이다." 아마 마지막은 아동이 당분이 들어간 음료나 음식을 과하게 섭취했을 때 발생하는 슈가하이(Sugar high)를 말하는 것 같다. (전적으로 내 추측이다.)
또한 과잉진단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온라인에 ADHD 자가진단표라고 떠돌아 다니는 체크리스트를 해 본 성인 중 많은 수가 "혹시 나도?"라고 의심했다. 솔직히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이는 인식 부족으로 진단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드러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진단받은 ADHD인들은 전수조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대표적인 질병은 바로 성병일 것이다. 그 중 하나인 매독이 얼마 전 시끌시끌했다. 매독 환자가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는 거다. 성병이 유행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 없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는 동시에 표본에 대한 오류이기도 하다.
이게 뭔말이냐 하면, 예컨대 서울 시민 전체의 피를 한 명 한 명 다 뽑아다가 전수조사를 하는 게 아니라, 서울시 종로구의 어떤 병원에서 성병을 진단받은 사람의 수를 파악한다는 거다. 매독도 원래 다른 성병과 마찬가지로 표본 감시 대상이었으나, 얼마 전 전수 감시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 자연히 각 지역 일부 병원에서 환자 수를 감시하던 게 전체 병원으로 확산되니 사람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숨겨진 빙하가 드러난 셈이다.
ADHD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금껏 봐 왔던 ADHD인은 빙산의 일각일 뿐, 실상은 그보다 더 많을 게 분명하다. 2030 성인을 중심으로 ADHD 검사를 진행하던 걸, '정신병' 자체를 부인하는 성향이 강한 5060, 혹은 그 이상으로 확장하면 어떻게 될까? 훨씬 많아질 것임이 분명하다. (참고로 내 부친도 ADHD일거라는 심증이 한 99.9% 정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유념해야 할 건, 치료받지 않은 ADHD는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ADHD 아동은 교육 성취도가 낮고 치료받지 않은 채 성장했을 때 소득분위가 낮은 것으로 이미 다양한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다. 전체 인구의 5%에 달하는 인구가 이러한 사회경제적인 영향 아래에 놓인다고 하면, 대한민국 국민 5천만 중 250만명의 사회경제적 손실이 생기는 셈이다. 사회 전체의 교육 성취도와 소득을 낮추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독일의 경우, ADHD인의 인당 평균 평생 소득 손실이 92,000유로(한화 약 1억 4천 300만원)에 달한다. 독일의 GDP가 한국의 약 1.5배에 달한다는 걸 고려했을 때, 대한민국의 인당 평균 평생 소득 손실은 약 61,333유로(한화 약 9천 586만원)에 달한다.
즉, 250만명의 239조 6천 500억원이다.
참고로 나는 경제에 대해서는 까막눈이고, 단순히 GDP에 비례하여 이를 계산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한국을 반영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치료되지 않은 ADHD가 얼마나 큰 임팩트를 가질지는 상상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사회가 손실을 떠안는다면, 왜 사회의 울타리가 기능하지 않는가?
소아~청소년기 학생을 전수조사하고, 위험군 아동을 대상으로 반복 검사를 시행한 후 투약치료와 행동치료를 병행한다면? 그러면 인당 9천 586만원이라는 돈까지는 안 들지 않을까? 아동의 ADHD 치료제는 급여화되었으니, 개인부담금은 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ADHD 치료제가 급여화되었다고 해도, 성인은 아직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올해 초, 성인에게도 부분급여화가 진행되었다. 단, 조건이 있다. 18세 이전에 ADHD를 진단받은 경우, 성인기 투약에 대해서 급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장난하나? 나는 28세에 첫 진단을 받았단 말이다. 나는 여전히 비싼 돈 주고 ADHD 약을 타 먹는다. 어머니가 약국을 운영하셨다면 모르겠는데, 이미 은퇴해버리셨으므로 내겐 선택지가 없다.
나에게 있어, ADHD는 단순한 질병에서 그치지 않는다.
ADHD임을 알기 전 이해되지 않던 '쓰레기 값'이었고, 내 정체감에 영향을 주는 '혼란변수'였고, 측정 불가능한 '노이즈'이자 이상하게 튀어버린 '이상치'였다.
나도 내 병에 나를 가두고 싶지는 않지만,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변수가 대체 어떻게 생긴 놈인지는 확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