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와 낮은 자아상

내가 나를 미워하게 된 순간들

by 한노랑

"왜 자꾸 똑같은 실수를 해?"

내가 살면서 제일 많이 들은 질책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학생일 때, 특히 국어나 사회 문제를 풀 때 가장 많이 틀렸던 문제, '틀린' 것을 고르시오. 심지어 '틀린'에 볼드체가 되어 있어도 나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1번에서 맞는 답이 보이면 그것을 골라버리고, 다른 선택지는 보지도 않은 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자, 이제는 '틀린'에 세모 모양으로 표시를 치기 시작했다. 부정어를 표시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그 다음 내가 마주한 문제, '모두' 고르시오. '모두'는 네모였다. 모르는 문제는 별표가 되었고, 두 번 풀어도 모르겠는 문제는 소용돌이 표시가 되었다. 나의 시험지는 내 실수들로 인해 점점 알록달록해져갔고, 적어도 학업에서는 그런 식으로 내 실수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서의 일은 달랐다.

내가 실수를 하면, 환자는 죽는다. 혹은 감염이 생긴다. 혹은 그 어떤 형태로는 문제가 생겼다. 다른 곳에 가면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수술장에서 일했으므로 확인된 수술 순서들이 있었다. 문제는, 순서를 기재한 나의 연습장은 정작 수술에 들어가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는 거였다. 당연하다, 소독이 되지 않은 물건이니 활용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내 두뇌를 믿어야 했지만, 손은 느리고 당황하면 머릿속이 백지가 되었으며, 미리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움직이지 못했다.


내 프리셉터 선생님은 실망했다.

나는 선생님의 기대치를 채우지 못했고 늘 위축되어 있었다. 내 행동에는 늘 사회적 피드백이 쌓였다. 주변의 다른 선생님들은 "그만하면 잘했어" "다시 안 그러면 돼"라고 말했지만, 나와 하루의 8시간을 붙어 있어야 했던 프리셉터 선생님은 "왜 이렇게 했어?" "할 거면 제대로 해" "왜 똑같은 실수를 또 해?"라고 말했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비난을 이제는 완전한 타인에게서 들었고, 실패 그 자체보다는 반응이 상처가 되었다.


한 부분을 지독하게 후벼파이면, 그 자리는 흉터가 된다.

피부의 상피조직은 상처가 나면 아문다. 하지만 아물기 전에 또 상처가 생기면 지속적인 염증으로 발전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반흔조직이 된다. 사람의 마음도 꼭 그렇다.

자주 아프게 물린 곳은 아프게 남는다. 나는 실수에 대한 지적을 받으면 내가 받았던 지적들을 하나하나 불러오게 된다. 뭐 버튼이 잘못 눌린 것처럼, 나는 내 마음에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인가 봐"라는 글씨를 꾹꾹 눌러서 썼다.


새로운 행동을 하면, 실패할 것부터 먼저 걱정했다.

나는 어차피 그 일을 제대로 못 할 것이고, 또 실수를 지적받을 것이고, 또 상처받을 게 빤했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벌이는 충동적인 일을 제외하면, 잘하는 일만 계속 하고 싶었다. 사실 잘하는 게 뭔지도 잘 모르면서.


그러다, 어느 날 내 프리셉터 선생님처럼 신규 선생님을 혼내는 날 발견했다.

신규 선생님이 잘못한 건 없었다. 그냥 내가 잘못된 거였다.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내가 건강하지 못해서 수술의 순서를 착각했고, 부끄럽게도 신규 선생님을 잘못 지적했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수술이 끝난 후 사과했지만, 신규 선생님이 그걸 잘 받아줬던지는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내가 퇴사하기로 결정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힐난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병원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과하게 미안했고, 부끄러워했고, 관계에 대해 불안해한다.

모든 게 내 잘못 같았고, 실제로도 내 잘못이었고, 내가 결함 있는 사람인 것만 같다. 옆에 앉은 직장 동료가 키보드를 조금만 과하게 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의 기분을 알아채고, 낫게 해주려고 애쓰지만 먹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감정이나 정신적 체력을 쏟는 것과는 별개로 딱히 좋은 결과가 돌아오지는 않는다.


나는 얼마나 나를 나쁘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나에게 나는 "결함 있는 사람"이다. 어디 하나 나사가 빠져 있고, 엉뚱한 생각을 하며, 생각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루저.

이 모든 건 나의 낮은 자존감을 형성했다.


이걸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있다.

대표적으로, 로젠버그 자존감 척도(Rosenberg Self-Esteem Scale, RSES)가 있다. RSES는 개인의 자존감을 측정하기 위해 표준화된 설문 도구로, 1965년 미국의 사회학자 모리스 로젠버그가 개발하여 현재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모든 문항은 "그렇지 않다" "대체로 아니다" "대체로 그렇다" "항상 그렇다" 네 개로 나뉘며, 총 10가지 문항으로 되어 있다. 최대 30점이고, 점수 밴드에 따라서 3가지로 나뉜다.

간단하니까, 한번 같이 해 보는 것도 좋겠다.


1.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2. 때로 나는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3. 나는 좋은 자질을 여럿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4.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만큼 일을 잘 할 수 잇다.

5. 나는 자랑할 것이 별로 없다.

6. 때로 나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

7. 나는 적어도 내가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게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8. 나는 나를 더 존중하지 못해 안타깝다.

9. 대체로 나는 실패자라고 생각한다.

10. 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를 대한다.


혹시 이 문항들에 대해서 작성했다면, 이제 채점할 시간이다. 이 질문들은 역문항이 있어 채점에 유의가 필요하다.

1, 3, 4, 7, 10번 문항에서는 "그렇지 않다 (0점)", "대체로 아니다 (1점)" "대체로 그렇다(2점)" "정말 그렇다(3점)"으로 채점하고, 2, 5, 6, 8, 9번 문항은 반대로 채점한다.

점수가 25점 이상이면 자존감이 높고, 점수가 15~24점이면 자존감이 보통이고, 점수가 14점 이하면 자존감이 낮다고 평가한다.


나는 8점이 나왔다.

그렇다고 내가 ADHD라서 자존감이 낮다는 얘기는 너무 일반화한 얘기가 아닐까? 그래서 논문을 좀 찾아봤다. 사람을 모으지 않고도 결과를 알 수 있다는 건 참 좋다.


스크린샷 2025-05-21 170401.png https://journals.sagepub.com/doi/full/10.1177/10870547241237245

이 논문은 체계적 문헌고찰 논문으로, 기존의문헌을 철저하게 검토하여 명확한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저자들은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출판된 논문을 뒤져서 11개의 연구를 찾아냈다. 유럽 논문 4개, 북미 논문 3개, 중동 논문 2개, 아시아 논문 2개. 이 중 ADHD 성인의 RSES 점수가 나온 건 7건이고, 6건에서 ADHD인과 비ADHD인을 비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ADHD가 있는 성인은 ADHD가 없는 성인보다 자존감이 낮다.


ADHD를 진단받은 그룹의 평균 RSES 점수는 15.0-19.3점으로, 자존감이 보통 수준이었다. ADHD의 증상이 있는 그룹의 평균 RSES 점수는 15.2-20.2점으로, 자존감이 보통~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대조군(ADHD가 없는 성인)의 RSES 점수는 21.2-24.6으로, 자존감이 높은 수준이었다. 성별(정확히 말하자면 젠더)에 따른 차이는 유의하지 않았다.

이 말은 진단 여부보다, 증상 자체가 자존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 때문에 미친듯이 점수가 상향평준화 된 것일 수 있다.

내 편견이 섞인 것일 수도 있다. 100년 전 제국주의 아래 굳건한 자본층을 형성하고 여전히 식민화된 국가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북미, 유럽 국가 성인들의 자존감이 한때 식민지였던 나라에 사는 성인의 자존감보다 나쁠리 없다고 생각하는 게 나니까.


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낮은 자존감은 ADHD 성인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11개의 논문 중 4개의 논문만이 ADHD를 가진 성인의 다른 동반질환을 조사했는데, 불안장애, 식이/섭식장애, 물질남용장애, 우울증, 강박증(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OCD), 불면증, 공황발작, 심지어 PTSD까지 수집되었다. 다른 4개의 논문에서도 ADHD 성인들의 정신과적 장애의 평균 증상 수준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울, 불안, 신체화장애)


ADHD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만들었다.

주의력 결핍이든, 집중력 장애든, 기능수행에 문제를 만들었든(그러니까 해야 하는 일을 못 하게 만들었든),과잉행동이든, 뭐든, 나에게 실수와 실패를 주었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게 만들었으며, 부정적인 자아상을 만들었고, 결국은 불안과 우울, 강박에 시달리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다.

내 삶은 온통 세모 표시가 되어 부정적 피드백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러면, 굴레를 깨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리의 시작을 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수, 실패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끊어내는 것. 실수나 실패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실수와 실패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가당키나 한가?

사회에서 실수를 저질렀을 때 나에게 다가올 책임과 불화는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인데. 응당 실수 없이 모든 일을 매끄럽게 해나가야 하는 게 아닌가?


여기서 나는 새로운 개념과 마주쳤다. 자기 불일치 이론(Self-discrepancy Theory).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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