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여자 선배들은 어디로 갔을까

멘토가 필요해

by 조이 Joy

어쩌다 마흔이 되었다. '어쩌다'라는 표현을 쓴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2~30대가 생각보다 금새 지나갔고, 마음은 나이를 먹는 것과 몸이 늙는 것에 비해 속도가 느리게 변하기 때문이다. 사십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동안 무엇을 했는지 잠시 생각을 해보니 학교를 다니고, 취업을 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와중에 꾸역꾸역 육아와 병행 하며 회사도 다녔다.


음.. 꽤나 열심히 살아 온 숨가빴던 여정인데 한줄로 요약해 보니 "적당한 시기에 정해진 일들을 착실히 수행했다." 쯤으로 일축된다. 그러니깐 당연히 그 시기쯤 해야 하는 일을 했던게 되어 버렸는데 왜 이렇게 숨이 가쁘지? 그리고 왜 자꾸 이런 식으로 평생 살아갈 자신이 없어지는 걸까?


불혹이라는 말은 꽤 근사한 단어다. 어떤 것에도 흔들림이 없는 시기. 한마디로 멘탈이 '갑'으로 진화 한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불혹이라 마흔살을 명명한 공자님은 현대 사회에서 그러니깐 40대 일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는 아줌마의 입장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40대 일하는 아줌마의 일상은 예상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였다. 어린 아이들을 자주 열이 나고 아팠고, 베이비시터는 툭 하면 그만 둘 것 같아 눈치를 봐야했다. 일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엄마만이 해줄 수 있는 일들이 쌓여 있었고, 회사에 가면 조직에서 인정받기 위해 일을 더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냥 할 일들만 쳐내기도 바빴다. 난 늘 용을 쓰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은 60년대 고아들 처럼 불쌍해 보였고, 회사에서도 생각만큼 인정받지 못했다.


이 와중에 체력은 바닥을 쳤다. 연 달아 아이를 둘이나 낳고 수면 부족과 운동 부족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체력이 떨어지고 피곤해 질 수록 나는 예민해져갔고 가끔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했다. 즉 마흔이 가까워 왔음에도 어떤 것에도 흔들림이 없는 불혹은 커녕 생전 처음 겪어보는 하드코어 상황들을 겪어 내느라 멘탈은 물론 감정까지도 수시로 널뛰게 되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멘토를 찾기 시작했다. 일도 잘하고 아이들도 잘 키워낸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버티면 될거야'라는 뭉뚱그려진 조언 말고 실생활에 진짜 해답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가정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직장내에서 입지를 다지고, 관리자가 되어서도 후배들을 생각해주는, 나의 이상형이자 닮고 싶은 분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마흔이니 딱 10년만 먼저 더 살아본 오십 언저리의 선배에게 조언을 들어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출산휴가에서 복귀하기 전 나보다 한두해 앞서 아이를 낳은 A선배를 만났다. 그녀는 출산 하자마자 입주 베이비시터를 고용해 가뿐하게(물론 그녀의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당사자만이 안다. 단지 내가 보는 입장에서) 사무실로 복귀했다. 입주 베이비시터의 고용은 경제적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두드려 고민해봐야 할, 소중한 아이를 맡긴다는 부담이 공존하는 큰 고민거리였다. "큰 투자의 관점에서 봐야 하는 거야. 지금 월급 받아서 입주아주머니 비용을 지급하면 얼마 남지 않아도, 몇년 후 내 몸값이 높아지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을거야. 자기도 회사를 다녀봐서 알잖아?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 없으니 잘하는 전문가를 찾아서 아웃소싱을 줘서 능률을 올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되는거야."


일 잘 하는 워킹맘의 첫번째 조건 중 하나는 개인의 시간과 육아의 시간 회사의 시간을 잘 분배하고 아웃소싱을 줄 수 있는 일들은 효율 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어 놓고(필요하면 백업플랜까지) 언제든 다른 회사의 요원들과 같이 현장에 투입해 백프로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잘나가는 선배가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회사에든 사회에서든 도움을 줄 선배 워키맘들을 찾아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들을 많이 물어봐두라고 얘기해주었다. 멘토는 나보다 앞선 길을 갔던 사람들이기에 충분히 필요한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그래 나에게 필요한건 멘토야! 멘토와 동료들만 있다면 험난한 길고 헤쳐나갈 수 있을거야"


'멘토'라는 단어에 희망이 비추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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