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회사를 다니려면 온 우주의 기운이 필요하다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의 난이도에 대한 고찰

by 조이 Joy

첫째를 출산하고 직장으로의 복귀는 그래도 수월했다.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준다고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기 때문이다. 돌 지난 아이를 떼 놓고 직장으로 복귀는 경기도에 사는 친정엄마가 월요일 새벽에 서울 우리집으로 와 금요일 오후까지 지내다가 경기도 집으로 가는 시스템으로 운영이 되었다. 돌이 갓 지난 전적으로 돌본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이를 따라다니는 것 부터 수시로 안아주고 놀아주고 세끼를 먹이고, 깨끗한 옷을 입히는 엄청난 노동력을 기반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환갑이 넘은 엄마가 주로 담당하다 보니 1년 후 곱던 엄마가 할머니가 되어 버렸다. 갑자기 홀아비 신세가 된 친정 아빠도 엄마 없이 끼니를 챙기는 일이 1년이 지속되자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명랑하던 엄마의 얼굴에 웃음기도 사라졌다. 손자는 예쁘지만 고된 육체노동이 60대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이 기회에 육아 독립을 하고 싶기도 했다. 다 큰 성인으로 내 결정에 책임을 지고 싶었지만 사실 쉽지 않아 보였다. 그 때 운이 좋게도 직장 어린이집이 생겼고 아이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나는 서둘러 집부터 알아봤다. 출퇴근 시간을 절약해 육아에 쓰겠다는 전략이다. 직장 어린이집은 7시30분 문을 열고 오후 6시 30분까지 운영하기 때문에 야근이 없는 한 내 손에서 컨트롤이 가능했다. 아이가 긴 시간 어린이집 생활 잘 적응만 해준다는 전제하에... 첫 한달간은 아비규환 전쟁터 같은 어린이집 적응 기간을 거쳤지만 공갈젖꼭지와 애착인형 덕분에 비교적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가끔 하는 야근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남편과 조율해 테트리스 맞추듯 스케쥴을 조절하며 직장어린이집의 도움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게 정말로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첫째를 낳겠다는 결심과는 달리 둘째를 낳겠다는 결심은 빠르게 생겼다. 한번 아이를 낳아보고 키워본 경험인지 호르몬 덕인지 이왕 키우는거 두명이 효율적일 것 같다는 무모한 생각으로 세살 터울로 둘째를 낳게 되었다. 둘째를 출산하고는 약 6개월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서 그 기간동안 두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면 벌 수 있다는 얕은 생각도 있었다. 물론 만삭의 몸을 이끌고 어린이집에 첫째를 맡기고 출퇴근을 하는 것은 내 인생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힘은 일이었다. 하지만 들째 출산 후 생긴 소중한 육아휴직으로 두 아이를 내가 온전히 케어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달콤하고 짧은 3개월의 출산휴가와 6개월의 육아휴직은 금방 끝이 보였다. 복귀가 다가오자 첫번째 복귀때와는 다른 메가톤급 초조함이 찾아왔다.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고 회사로 복귀할 것이가?가 당시 내 인생 큰 허들이자 숙제였다.


돌도 안된 둘째 아기와 여전히 어린 첫째 역시 떼어 놓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다양한 옵션을 고려한 끝에 입주 도우미와 함께하기로 했다. 당시 중국 교포 이모님에 대한 아주 무시무시한 괴담 (아이를 유괴해 중국으로 데리고 가서 팔아버린다는)이 돌고 심지어 영화화 되기도 했는데, 미리 교포 이모님과 함께 지냈던 선배 워킹맘들의 조언과 도움으로 비교적 여러 검증 작업을 거쳐 입주 이모님을 모실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해도 두 아이를 키우는 집은 늘 소란스럽고 정신이 없었으며 회사로 치면 직장의 근무환경도 평범한 우리집 환경이 이모님의 기준에서 좋은 직장환경일 턱이 없었다.


어렵게 구한 이모님이 10개월만에 "코비네 집처럼 힘든 집은 지금까지 없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 그만두었다. 긴급 친정엄마,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한 시어머님이 투입되어 시간을 번 후 사돈의 팔촌, 지인의 지인, 영혼까지 수소문해 두번째 이모님을 구했지만 역시 8개월 정도 근무를 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그 사이 둘째가 어린집에 들어갈 수 있는 연령이 되어 숨통이 트였지만 걱정과 눈물로 지새운 무수한 날들이 스친다. 집안 상황은 육아로 발을 동동거렸지만 회사에서는 절대 티를 낼 수 없었다. 우아하고 고고한 백조처럼 언제든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처럼 쎈척을 했다. 아이가 둘이라는 이유로 약점을 잡히고 싶지도 않았고 불이익을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두분의 입주 이모님이 거쳐간 후 둘째까지 직장어린이집에 들어가자 같은 아파트 주민 중 시간이 되는 분과 인연이 되어 아이들 등하원을 도와줄 수 있게 되었다. 쓸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 가며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몰두했다. 워킹맘 멘토들의 조언대로 "내 미래를 위해 투자"라 생각하고 아웃소싱에 비용을 들였지만 나의 회사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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