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둘인 여자가 일을 한다는 것

대한민국 낮은 출산율에 대한 현실적인 고찰

by 조이 Joy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는데까지 5년이 걸렸다. 일도 해야 했고 신혼생활의 여유로움을 조금 더 누리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어영부영 하는 사이 시간도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시간이 우샤인볼트가 100미터 경주를 하는 것처럼 무섭게 달아났다. 내집을 마련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늘 내면 깊숙한 곳에 한자리 차지해 출산을 미루는 이유가 되었다. '월급쟁이가 몇년을 쓰지 않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면 아득해졌다.


그러다 결혼 5년만에 아이를 낳게 되었다. 계획했던 것들을 모두 이루고 다음 스텝의 출산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갑자기 아이를 가져야 겠다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리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아온 평험하디 평범한 나의 인생이 본격 하드코어로 바뀌게 되었다. 임신 초기 폭풍 입덧으로 시작해 임신 말기 퉁퉁 부은 몸과 거대한 배를 부어 잡고 뒤뚱뒤뚱 출근까지.. 다른 선배들은 '어떻게 아무렇지 않아 보이게 일을 했을까?' 라는 의아함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그저 내가 주변에 무심해 그들의 어려움을 간과했을 것 같다. 인간은 본디 자신의 어렴움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법이니 주변에 배가 남산만한 선배가 있어도 힘들겠다는 느낌만 가졌을 뿐, 그가 얼마나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던 것이었다.


3년 사이 순식간에 아이 둘을 낳고 출근하며 아이를 키우는데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데는 온 우주의 도움이 필요했다. 처음 아이 낳고 복귀했을 때는 친정엄마가 먼저 아이를 돌봐준다고 손을 들어 주었다. 그때는 이게 얼마나 고맙고 복받은 일인지 미처 몰랐던 것 같다. 경기도에 사는 엄마가 아이를 돌봐주기 위해 월요일 새벽 서울 우리집에 와 금요일 저녁까지 아이를 돌봐 주다가 집에 가는 시스템이었다. 매우 안정적인 시스템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호르몬의 영향인지 모성애가 탱천해서 퇴근 후 가능하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잠도 아이와 함께 잤는데 세 돌까지 새벽이면 한두번씩 깨곤 했다. 자연스레 출산전과 삶과 업무 배분의 무게가 좀 달라지긴 했다. 그러다 1년만에 친정 엄마는 집으로 가셨다. 혼자 지내는 아빠도 아빠이거니와 예쁘던 엄마가 1년새 쇠약해지고 할머니가 된 모습에 미안함이 교차해서 더는 잡을 수 없었다. 아무리 고마워도 엄마 붙어있으니 투닥거리는 시간도 많아졌다.


엄마가 떠난 빈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이번에는 시어머니가 투입이 되었다. 당시 시어머니는 무릎이 좋지 않으셔서 인공관절 수술을 한 후 회복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래도 시어머니는 손자를 돌봐주시겠다고 나서주었다. 하지만 난 어머님의 나이와 건강상태를 보았을때, 오래 아이를 단독으로 돌본다는 것은 무리임을 감지하고 주변 워킹맘 선배들의 조언을 들어 베이비시터를 구했다. 이렇게 거쳐간 입주 베이비시터 2명, 파트타임 베이비시터가 1명이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도 나도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졌다.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함께 하더라도 주 양육은 내가 될 수밖에, 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자리 잡게 되었다.


베이비시터 구하는 일은 아이가 둘이 되며 더 어려워졌다. 시장을 둘러 보면 아이를 다 키운 여성들이 가장 많은 베이비시터 후보군인데 아무래도 그 분들 역시 연령대를 고려해 수월한 집 아이 하나인 집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돈을 많이 지급한다면 조금 더 베이비시터를 쉽게 구할 수도 있을지 몰랐겠다. 하지만 처음 입주 도우미를 들였을때 내 입장에서는 미래를 위한 큰 투자였다. 당장 내가 버는 돈에서 시터의 월급을 떼어주면 남는 것이 얼마 없을 지라도 내가 오래 일할 수 있다면, 커리어에 대한 투자라 생각했다. 왜냐. 난 진취적인 여성이고 오랫동안 경제활동을 하고 싶으니깐...


그러나 아이를 돌보는 것은 온 우주가 도와 주어야 하는 일인 모양이다. 양가 어머님, 입주도우미, 직장 어린이 집 등...아이를 안정적으로 돌볼수 있는 기운을 영혼까지 끌어 모아 시스템을 구축하려 했지만, 뭐 하나가 삐걱대만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지는 엉성한 지렛대 위에 올라가 있는 기분이었다.


늘 어느 하나 삐걱대지 않도록 매니저 역할을 해야 하니 피로감은 나의 디폴트 상태가 되어버린것 같다. 일은 일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줄타기를 하며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육아의 레이스에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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