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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Nov 05. 2022

워킹맘의 시간

워킹맘의 시간 3

피로는 쉽사리 풀리지 않고 내 등과 어깨의 지방처럼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좀 떨어져 줄래? 육아에도 힘든 날이, 수월한 일이 번갈아 찾아오는 것처럼 일도 그렇다. 그걸, 생각해보면 이미 알고 있었는데 복직한 그 순간엔 오랜만에 리프레시된 느낌, 과거의 나로 돌아간 느낌에 사로잡혀 몇 달간 일이 재미있었다. '나만의 시간'이 회사에는 있었으니까. 막 절로 회사에 충성하게 되고. 충성 충성^^7


그러다 점차 옛 일에 적응해가던 무렵, '아.. 내가 이걸 참 싫어했었지. 이래서 일을 안 하고 싶어 했던 날이 있었지.' 하고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육아만 단짠단짠이 아니고 회사도 단짠단짠이다. 아기 앞에서 삭혀야 하는 것처럼 직장에서도 삭혀야 하는 일들이 점점 생기면서 다시 스위치 된다.


미화되었던 회사일은 현실로 복귀하고 전업주부였던 시절이 또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점점 리프레시한 기분도 사라지고 타성에 젖어 기계처럼 일어나 출근해서 기계처럼 일하고 퇴근하는 일상. 퇴근길이 지나면 다시 출근길이 도래하는 24시간 내내 자는 시간 빼고는 주야 2교대처럼 느껴지는 그런 삶. 계속 돌아가는 육아 열차에 탑승한


워킹맘의 삶



퇴근길 집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다. 음메.. 하필 오르막이야.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본다.  혹여 남편이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음메에.. 더 구슬퍼지니까. 남편이 회식이라고 하면 내가 그 자리에 가서 모두를 폭탄주로 올킬시키고 8시 안에 남편을 데리고 복귀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혹시 내가 술이 먹고 싶은 것은 아닌지)


아기를 보는 게 기쁘지 않으냐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라니!! 하며 나더러 모성애가 썩었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아기를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아기는 참말 이쁘고 내게 달려와 반겨줄 때 아주 잠시 폭발적인 기쁨의 에너지가 생성된다.

퇴근길.. 날 마중나온 사랑스러운 너

하지만 퇴근길 나는 이미 지쳐 있다.


육아를 위해 에너지를 잘 소분해서 이유식 큐브 얼리듯 냉동했어야 했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퇴근 후 깔끔하게 정돈된 집에 들어가 대충 배달음식을 시켜서 맥주 한 캔 뜯고 넷플릭스 뙇 수리남을 틀고 크하~~ 존잼이네 리뷰도 좀 봐주고 뜨끈한 물로 샤워하고 여유 있게 드라이기로 머리도 말리고 누워서 잘 준비를 하는 나는 평행세계 어딘가에서 혼자 살고 있다.


현실은 대문을 열기 바쁘게 날 맞이하며 떨어지지 않는 아기를 안아주고 뽀뽀해주느라 나의 방광은 용을 쓴다. 조금만 더 버텨..! 아기는 내게 밥 먹을 시간도 주지 않는다. 손을 붙잡고 나가자고 매달리고, 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잡기 놀이를 하자고 칭얼댄다.

퇴근하고 산책하던 나날들

나는 아기가 잠들기 전까지 주고 싶은 '엄마의 사랑'을 1초라도 남김없이 주고 싶어서 목이 쉬어라 책을 읽어주고 놀아주고 쫓아다니고 잡기 놀이를 한다. 아기를 목욕시킬 때 나도 함께 한다. 아기가 목욕놀이 장난감에 심취한 사이 빠르게 군대식 샤워를 한다. 분명 아기를 재울 때 나도 뻗을 테니까..! 지금 씻어야 해..! 아기는 내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릴 틈을 주지 않기 때문에 늘 내 머리는 떡져 있다. (남편이 칼퇴하고 오면 여유롭게 나 혼자 샤워할 수 있다. 그런 사소한 행복이.. 남편의 칼퇴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나마 나는 퇴근길에 하원을 하지 않고 집에서 할머니가 이미 아기의 저녁밥을 먹이신 후에 도착하니, 그나마 나은 편이다. 퇴근길이라는 '숨 돌릴 틈'이 존재하니까. (대신 왕복 4시간이라는 출퇴근 시간을 택한 것뿐)


그렇게 일에 치일 때 쉬고 싶고, 때로는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자아와 출근하고 나면 사랑스러운 아기를 보고 싶어서 틈날 때마다 아기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키즈노트에 오늘 아기의 모습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또 다른 자아가 공존하는


워킹맘의 하루


배 속에 아기를 품고 다닐 때처럼 긴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지금, 퇴근 후 아기와 저녁 산책을 하고 함께 책을 읽고 양치를 하고 목욕을 하고 잠들기 전 영양제와 우유를 먹이고 때론 아기를 재우고 어두운 거실을 가로질러 다 돌아간 건조기에서 뜨뜨무리한 아기 옷들을 꺼내어 고이 접는

워킹맘의 시간


그 8할은 항상 같이 하지 못한다는 미안함으로 채워져 있다. 나의 미안함을 아기는 알는지.


물리적인 시간은 함께 하지 못해도 시공간을 초월한 내 마음속 시간은 언제나 아기와 함께 있다는 걸 아기도 알게 되기를. 내가 열심히 일하러 가는 모습이 아기에게도 앞으로 어떤 직업을 고를 것인지, 노동의 가치란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그렇게 아기의 사진과 동영상은 내게 박카스보다, 커피보다 더 큰 에너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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