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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Sep 17. 2022

엄마가 되었음을 느끼는 순간

지난주 태풍 때문에 어린이집에서 하려고 했던 한복 행사가 이번 주로 밀렸다. 올해는 추석 전에 코로나도 걸려 어린이집에도, 친정에도 가지 못해서 한복을 사지 않으려 했다. 사실 이미 3주 전에 주문해놓은 아기의 한복 배송이 지연되다 지연되다 결국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반품되었기 때문에 욱한 것도 있다. 설이나 되면 그때 아이의 사이즈에 맞추어 하나 살까 싶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의 행사가 일주일이 밀렸고, 갑작스레 한복을 입고 등원하게 생긴 것이다. 그렇게 진시장에서 친정엄마가 급하게 사주신 노란 한복.


5만원


아기는 유독 노란색과 머스터드색이 잘 어울려서 인디핑크나 하늘색, 남색 한복을 어깨에 대어 볼 때와 노랑을 대어 볼 때 얼굴빛이 달라진다.


이.. 이게 퍼스널 컬러의 힘인가?

넌.. 봄웜톤이고?


어린이집 안내문에는 소매나 바지가 긴 경우, 흘러내리지 않도록 핀으로 고정시켜 보내달라고 했다. 핀은 위험할 수 있으니 하얀 실로 보이지 않게끔 소매를 접어 바느질을 하는 게 낫기에, 아기가 잠든 밤 반짇고리를 꺼냈다. 사실 이 반짇고리도 아기가 태어난 후 터진 인형의 등을 꿰매기 위해 샀던 것이다.


바느질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어, 등을 구부리고서 서툴게 바늘을 집어넣었다가 저 멀리서 빼내기를 반복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내가 엄마가 되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엄마가 되었다는 느낌은 아기를 낳던 순간의 분만실에서도, 젖을 물리는 순간에도, 아기와 놀아주는 순간에도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었다. 아기는 아기이고 나는 나고. 그저 두 음절로 된 '엄마'라는 역할을 받아들인 것뿐이었다. 그런데 아기의 옷을 촘촘따리 바느질하고 있는 나의 모습, 메타인지적으로다가 그 모습을 3인칭 전지적 시점에서 의식하니 내가 비로소 엄마가 되었구나.




살아오면서 누구를 위해서도 바느질을 해 준 적이 없었다. 나 자신을 위한 적도 없었다. 내 옷이었다면 교환하러 갔겠지, 내 양말이었다면 버리고 새 양말을 샀겠지, 내 인형이었다면 버리고 더 예쁜 인형을 샀겠지. 소비 중심주의의 사회에서 자라온 나의 삶은 그랬다. 그런데 아기의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둥그렇게 몸을 말고서 한 땀 한 땀, 서툰 바느질에 땀까지 흘리며(가을인데?) 바느질을 한다.


어쩌면 엄마가 된다는 것은 물리적인 출산 이후에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위해 보이지 않는 어떤 행위를 행할 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때 깨달았다. 너를 위한다고 만들었던 음식들, 사주었던 책들과 장난감들.. 그건 사실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었음을.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아기를 보는 나의 행복, 일하며 고생해서 받은 월급을 아기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플렉스하며 합리화하던 나의 소비욕구. 그 행동들의 최종 목적지는 나를 향해 있었다는 것을. 그런데 이 별 것 아니어 보이는 바느질은, 무엇을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아기를 위한 행위임을..


고된 하루 업무가 끝나고 아기를 어르고 재운 후 어둑한 방에 켜 진 스드와, 그 불빛 아래 움직이는 나의 손. 피로함을 무릅쓰고 앉아서 하는 이 행위의 소중함.


의무라면 의무처럼 보이는 이 사소한 행동들 속에서 나는 아기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무사히 끝난 어린이집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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