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Sep 17. 2022

무조건적인 사랑의 주체

워킹맘의 시간 2

아기가 어린이집에 간 이후, 내가 복직을 한 이후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다. 마가 낀 건지 그냥 평소처럼 다리를 접질렸을 뿐인데 인대가 늘어나 깁스를 하고 몇 주를 보냈다. 아기는 한 달에 최소 1번 이상은 항생제를 먹어야 할 정도로 콧물이 흐르고 중이염에 걸리고 열이 나기를 반복했다. 어쩌면 어린이집에 기거하는 바이러스들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엄청난 감기 바이러스의 결정체들 인지도 모른다.


중이염을 앓고 있어서 밥을 잘 먹지 못하고 늘 콧물 범벅인 아기는 살이 빠지고 인대가 늘어난 다리로 인해 걷는 게 힘든 나는 살이 찌고 있다.


사실 그런 것들은 육체의 힘듦이다.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정신적인 부분인데 그중 하나가 아기가 아빠를 너무 좋아해서 아빠만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은 나의 어떤 부분을 건드려(아마도 나의 유년 시절을 건드리는 것이리라) 상처를 입곤 하는데, 아기를 대상으로 상처를 받아봤자 무엇을 할 것인가, 상처받았으니 나도 똑같이 상처 줄 거야, 하는 건 너무나 미성숙한 대처라는 걸 아는데


성숙하게 대처한다고 해서 섭섭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또 아닐 것이다. 그저 마음이라는 건 다스려야 할 뿐이라는 것을 부모가 되고야 깨닫는다.


아무런 악의가 없는 아기에게서 상처받는다는 걸 남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나를 제일 좋아해 줄 거라 생각한 아기가 그렇지 않을 때의 심적 타격은 상당하다. 내 안에 애정을 갈구하는 협곡이 들어 있었나 보다.


그럼에도, 내가 섭섭해도, 내가 상처받아도, 나는 아기를 사랑할 의무가 있다.


바라지 않는 사랑. 그게 부모가 아기에게 주어야 할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바라지 않는 사랑, 부모의 그 의무는 무조건적인 사랑일까? 우리가 소위 '아가페'적인 사랑이라고 하는 절대적이고도 조건 없는 사랑. 우리는 때론 아기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하곤 한다.


"내 말을 잘 들으니 이뻐"

"엄마 말 잘 들었으니 넌 착한 아이야"


그런 말들에는 어떠한 조건들이 붙는다.


우리는 아기를 존재 그 자체로서 사랑해 줄 의무가 있는데 이미 세상의 때가 너무 많이 묻어서인지(그래서 목욕탕에 가서 때를 벗기는 걸까) 아니면 타고난 프로 가스 라이팅인들인 건지 아기에게 많은 조건들을 무의식적으로 내뱉고 만다.


<알성 달성 우리 아이 성교육>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가스 라이팅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가스라이팅은 부모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들의 자아에 상처를 주거나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조종하려고 하기 때문이죠. p217


아기는 그 반대이다.


아기는 부모를 그 어떤 조건 없이 사랑한다. 말로만 듣던 조건 없는 사랑을 아기를 낳고서야 처음으로 받아보았다. 그건 정말로 눈물 나는 일이다. 사랑이라는 게, 사랑을 받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나의 외모나 내면, 몸매라든지 성격 같은 나를 둘러싼 것이 아닌 나라는 존재를 사랑해주는 존재. 그건 아기뿐일 것이다.


아기가 자라면서 세상의 때를 조금씩 알게 될 때, 엄마인 내가 아기에게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아기는 나를 미워하게 또는 사랑하게 될 것이다.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애증의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 그건 '나의 태도'에 달려있는 것이다. 아기는 어제나 처음부터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었다.


그래서 늘 다짐한다.

아기가 나를 제일 좋아하지 않더라도, 아기의 1순위가 아빠일지언정, 어느 날엔 "엄마 미워"라고 말하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언제나 아기를 사랑하겠노라, 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유기 불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