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Sep 17. 2022

유기 불안

워킹맘의 시간

생후 15개월인 아기를 두고 일을 나간 지 한 달. 예상했던 것보다 일하는 게 재미있고 엄마로서의 삶이 아닌 나의 삶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내게 존재했는지도 몰랐던 유기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내 마음 어딘가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걸까,


대체 언제부터?


하루에 아기와 함께 있는 시간은 2-3시간 남짓. 아기는 최근 한 달 재택근무를 하던 남편과 할머니 품에서 지냈다. 이제는 그 품이 익숙해진 건지, 내가 퇴근을 하고 와도 한참은 심드렁하다. 한동안은 눈을 피하다 2-30분이 지나면 날 보고 웃기 시작한다.

사진도 같이 안찍으려고 뻗대던 녀석

아침에 일어나도 엄마가 없어서 실망한 거니?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가 널 버렸다 생각했니?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아기를 끌어안고 속으로 묻는다. 늘 함께 있다 어느 순간 하루의 절반 이상을 사라져 버린 엄마가 되었다는 생각은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아기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엄마가 날 버렸다고?


때론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와 노는 걸 더 좋아하고 안겨 있는 아기를 볼 때면 나 역시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 없이도 너무 잘 지내는 네 삶에  더 이상 내 자리가 없는 느낌. 아니, 그 느낌은 의식적으로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나를 서서히 좀먹는다.


그래서 나는 내 감정과 생각을 아기에게 투사하고 만다. 정작 아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럴 시간에 더 웃어주고 더 안아주고 더 사랑해줘도 모자랄 텐데, 아기로부터 버려지고 싶지 않다는 그 불안감은 점차 아기에게 집착하게 되고, 요구하게 된다.


나를 좀 봐줘

나를 좀 사랑해줘


어느 순간 아기의 앞에서 아이가 되어 있는 나의 내면을 마주하면 깜짝깜짝 놀란다. 내가 되고 싶지 않은 부모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그런 아기도 나의 불안이, 집착을 통해 불안을 해소하려는 모습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일을 한다고 떨어져 있어도 엄마가 널 사랑해

멀리 있어도 엄마는 늘 너를 생각해


아이를 안고 토닥이며 해 주는 말들은 사실 내게 하던 주문이었던 것이다. 불안해하지 말라고, 안심해도 된다고.


그렇게 여느 때처럼 아기를 꼭 껴안았던 어느 날 아기는 그 조그만 손으로내 등을 토닥토닥해주었다. 내가 늘 해주었던 것처럼.


엄마, 괜찮아.


토닥이는 손으로 말하는 것 같아서

내 안에 가득 찬 유기 불안을 조금씩 떨쳐보기로 한다.


불안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먼저 물려받은 불안의 고리를 끊어내 보기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 생긴 직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