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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Nov 01. 2023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

임산부의 나날


꼭 글을 적어야만 하는 센치해지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무거운 몸(임신 3개월밖에 안되었지만 이미 무겁다)을 이끌고 집으로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글을 쓰고 있다.




장거리 출퇴근 속에서 반가운 노래를 들었다.


나는 외로움 나는 떠도는 구름

나는 끝없는 바다 위를 방황하는 배


그댄 그리움 그댄 고독한 등대

그댄 저 높은 밤하늘에 혼자 떠있는 별


15년 이상 잊고 있던 그 노래, 듣자 마자 나도 모르게 가사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기억이 쇠해도 젊은 시절 노래 가사는 잊혀지지 않는다더니, 음악은 스무살 언저리의 나와 그 노래를 부르던 동기의 모습까지 떠올리게 했다. 뚝딱거리던 우리들의 합주, 어느덧 동아리는 벌써 31주년을 앞두고 있고 우리는 벌써 불혹을 향해 달리는데 말이다.




며칠 전 그네들을 만났다. 이미 대학생의 면모에서 쩌들어버린 직장인의 면모로 우리들은 등산(아닌 등산)길에 올랐다. 임산부도 등산이 가능하다 물으시냐면 장태산 자연휴양림 정도는 쌉가능이라고, 걷기수준이지만 마치 암벽을 오른 것과 같은 그런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만천하에 알리고 싶다.



그 때 무슨 대화들을 했는지 모른다. 이쯤되면 단기기억에 문제가 있는지도. 다만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단어 하나에 웃고 의미없는 말에 농담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의미 없는 농담들이 가지는 그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이가 들수록 관계에서 생기는 회의감 속에 그런 '의미없음'은 내게 생기를 준다.


사람들의 관계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깊은 관계가 되어버리면 역으로 그 관계가 가지는 게와 중요성이 동일하지 않아 기울고 만다. 우리들은 그런 걸 MBTI로 'T의 말에 상처입는 F들'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가스라이팅'이니 '시녀짓 한다'느니 여러가지 말로 비대칭적인 관계를 정의하곤 한다.


때로는 환경과 직업에 의해 내가 오랫동안 알던 그 사람이 아닌 새로운 면모에 이질감을 느껴 멀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손절과 당혹감과 정뚝떨과 서서히 멀어지기 전법 등을 쓰며 관계를 정리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결국은 오래 가는 관계란, 적당히 덜 매몰되고 적당히 독립적이며 적당히 만났을 때 의미 없는 즐거운 만담과 드립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 사이사이에 우리들만의 추억이 담긴 노래라든지, 우리들만이 아는 별명들이라든지.. 현재의 근황토크과 과거의 노래와 의미없는 농담들이 어쩌면 깊게 매몰되는 관계보다 건강한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슨 친구사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노래 제목 그대로 (가사전문은 다르지만) 나는 외로움니까. 그대는 고독한 등대고.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니까, 세상엔 같은 무게의 관계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렇 생각해보면 인간관계도 가늘고 길게 가볍고 길게 가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어느 순간 내 마음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는 극한의 외로움이 찾아오는 순간도 있지만 말이다. 엄마라는 타이틀을 얻고 나면 그런 외로움을 더 직면하게 되는 것 같다.


외로움을 견디는 일

우울감을 견디는 일

가끔 찾아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시간 속에너 무의미한 시덥잖은 농담 속에서 추억과 웃음을 하나씩 찾아내는 일


그게 지금의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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