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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Dec 31. 2022

비수면 내시경과 출산의 공통점은 바로

2022년 12월 29일의 이야기


내년부터는 만 나이로 바뀌면서 아무리 떡국을 먹어도 나이를 먹지 않는 멈춰버린 구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2년 연속으로 노산이면 노산이고 아니면 아니라는 애매하게 걸친 나이가 되었다. 애초에 그 35세는 누가 정한 것인가. 어쨌거나 나는 첫아기를 수치 상 노산 이전에 낳았는데, 그런 걸로 안심을 하기도 전에


원인불명의 소화불량이 찾아왔다


튼튼한 위장을 가졌기에 위장 유세는 제법 부리며 살아왔는데, 친구들과 파스타와 피자를 흡입했던 그날.


35살(아직 만 나이가 아니다. 내년에도 35살일 예정이다) 생애 최초로 급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식은땀과 설사, 목까지 음식으로 꽉 차서 누가 톡 건들기만 해도 구토할 것 같은 기분에 어지럼증, 백지장이 된 얼굴로 숨만 겨우 내쉬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당시 "살이 쪄서 의자와 벽 사이를 지나가지도 못할 것"이라고 막말을 했는데도 나는 토할 것 같은 정신을 붙잡고 있느라 바빠서 말이 나오지 않아 대꾸할 타이밍도 놓쳐버렸다.


그런 일들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막말 말고 급체가. 잔반제로가 인생의 모토였던 내가 '아, 이거 한 숟갈 더 먹으면 아프겠구나' 하며 도저히 못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을 때, 나는 비로소 소식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비로소 잔반을 남기는 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숟가락을 놓는지 알게 된 것이다.


김밥 3줄과 단팥빵 5개를 기본으로 먹어대던 내 위장 상태가 이쯤 되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겁이 났다. 내시경을 예약하러 갔다. 내시경은 수면과 비수면이 있다. 고통 없이, 대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 비몽사몽 횡설수설 가능성의 비싼 수면 내시경과 저렴한 만큼 고통과 수치심이 배가 되는 비수면 내시경.


"저도 비수면으로 해요. 할만해요, 추천드립니다"


의사 선생님은 비수면 내시경을 영업하셨고, 생각해 보니 영업할 게 따로 있지 말입니다.


그렇게 말똥한 눈으로 침대에 누워 대기를 하게 되었는데 저 멀리서 들려오는 꺼억, 꺼억, 트림소리.. 뭐지?


뭐긴 뭐야 나의 미래지


나는 내시경 호스가 아주 가느다란 낚싯줄 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굵기가 내 엄지손가락만 했다. 호스는 재갈을 물고 있는(재갈 외에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도 마우스피스라 불릴 것이다) 내 입을 향해 돌진하는데 그 거무튀튀한 것이 뱀인 줄 알았다.


'출산도 했는데 뭐. 그거보단 안 아프겠지'


몇 시간 전의 생각을 반성한다.


출산이 밖으로 빼내는 고통이라면 내시경은 집어넣는 고통이었다. 눈물과 침(위액일까)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의사 선생님의 각도에서 보이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수치심과 더불어 단전에서 차올라오는 트림소리


꺼억


"환자분, 침을 삼키시면 안돼요. 침을 흘려버리세요"


'마치 내면의 걱정처럼 말이지.. 침도 훌훌 배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환자분, 호흡을 코로 하시고 입으로 뱉으세요. 호흡을 하셔야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분만실의 내가 생각났다. 출산이고 내시경이고 호흡이 중요하구나. 씁 후후


밖으로 빼낼 때도, 위 안으로 집어넣고 위를 헤엄쳐 다닐 때도

중요한 것은 호흡


물론 호흡은 살을 뺄 때도 중요하다.



"할만하죠? 처음엔 힘들지만 앞으로 할수록 점점 할만해지실 거예요"


수치심도 좀 줄어들까요? 하고 말하다가 대장내시경 용 구멍 뚫린 반바지를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 바지의 존재는 수치스러움 그 자체다.


"위는 괜찮지만, 헬리코박터균이 나왔어요. 2주 간 약을 먹어야 합니다. 설사할 수도 있어요"


의사 선생님은 헬리코박터 균이 급체증상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지만 어쩌면 단순히 노화로 인해 몸이 조금씩 고장 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비수면의 고통을 설파하고 수면 내시경을 영업하던 다음 날,


"난 매년 비수면으로 내시경 하는데? 호흡만 잘하면 할만해~"


하고 시어머니는 해맑게 말하셨다. 세상에 너무 놀라 위장이 꿈틀거린다. 헬리코박터 너네도 놀랐지?


생각해보면 내시경도 출산도 호흡만 터득하면 고통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 왠지 도전의식이 생긴다. 출산의 고통이 옅어지는 것처럼, 내시경의 고통도 조금씩 옅어져 미래의 나는 또 사서 고통과 수치심을 경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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