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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Dec 01. 2017

운명은 가까이에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七月與安生, SoulMate, 2017, 증국상 감독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중국어 제목은 칠월과 안생이고 영어 제목이 SoulMate이다. 제목을 처음 보고 기억 속에서 사라질 뻔했던 '소울메이트'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떠올렸다. 이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교 무렵일 것이다. 영어보다 한글로 더 익숙하던 '베스트 프렌드', '포레버'와 함께 눈 앞의 친구들과 서로의 이름 앞에 붙이곤 하던, 이런 호칭을 붙일 이가 옆에 있어 안도하고 기뻐하던 때가 있었다. 청소년 시절로 접어들자 상황은 많이 변했다. 베스트 프렌드들 중 언제나 내 편일 것 같았던 친구 하나는 중학교 때 가장 힘든 순간 돌아섰고 다른 이들은 이제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도 서로를 보며 운명의 친구라 말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진심 어린 말을 입에 담기 부끄럽던 사춘기를 거쳐 어느새 한 달 후면 20대 중반으로 접어들게 된다. 지나간 시간들 사이에서 다시 소중한 사람들이 생겨났고 또 사라졌다. 지금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게 될 만큼 지속적인 관계를 기대하지 않는 데 익숙해지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인가 싶다.



떠오르지도 않아 서서히 잊어가던 단어를 두 소녀가 웃고 있는 포스터 위에서 읽었다. 흔한 제목이라 생각하면서도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나도 모르게 영원할 것처럼 서로를 부르던 기억 속의 소울메이트들이 부러웠기 때문일까. 지난 목요일 코엑스에서 칠월과 안생을 스크린을 통해 만났다. 그들은 운명의 친구가 있으리라 믿은 순진한 지난 기억 속의 나였고,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를 접기 시작한 요즘의 나이기도 했다. 영화관을 나와 소울메이트가 모든 부분이 꼭 맞는 사람을 넘어선 관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해서 더 슬픈 미소를 짓던 칠월과 안생이 언젠가 모든 게 통하는 친구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 내 양손을 하나씩 따듯하게 잡아주는 듯하다.



열셋, 운명처럼 우리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열일곱, 우리에게도 첫사랑이 생겼다. 스물, 어른이 된다는 건 이별을 배우는 것이었다. 스물셋, 널 나보다 사랑할 수 없음에 낙담했다. 스물일곱, 너를 그리워했다.

14년간 함께, 또 엇갈리며 닮아갔던 두 소녀의 애틋하고 찬란한 청춘 이야기!                                                     


공식 홍보글을 잘 써서 가져왔다. 적힌 것처럼 성인이 된 안생이 <칠월과 안생>이라는 인터넷 소설을 읽으며 작가 '칠월'이 본 열셋부터 스물일곱까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인터넷 소설로 유명한 원작을 영화화했다. 현실에서 화제를 끌던 짧은 단편이 영화에서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수단으로 나온 걸 알고 보았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



주인공인 몸집이 작고 은은한 외모의 안생은 낯가리지 않는 활발한 성격이고, 키 크고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칠월은 조용한 모범생 타입이다. 외모만큼 성격도 상반되던 둘은 퍼즐처럼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채우는 단짝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외모와 성격이 다른 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지만 가정환경의 차이로 각자 생활하는 모습과 만나는 사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칠월이 가명을 좋아하게 되면서 둘 사이는 우정이 아닌 현실들로 채워진다. 칠월이 고향에 머물고, 안생이 떠돌아다니는 와중에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예전처럼 삶을 공유하고자 애쓰지만 서서히 둘은 멀어져 간다.



순종적인 칠월과 방랑하는 안생의 전혀 다른 상황이 둘 다 공감이 되었다. 정해진대로 살며 자유를 원하거나, 자유롭게 살고 외로워하는 마음 모두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난 뒤의 내 모습일 것이다. 꼭 맞는 듯했던 퍼즐은 어긋나기 시작했고 뭐든지 정반대인 그들은 차이를 공유하는 게 아니라 부러워하고 갈등하면서 어른이 된다. 우유부단하게 굴던 가명 때문에 신뢰가 무너진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매 순간 모든 걸 이야기하지 못하면 결국 소원해지는 흔한 관계처럼 서로에게 모든 것이던 칠월과 안생의 사이는 끝날 줄 알았다. 나처럼 이들도 상대방을 한 때 그런 친구가 있었지, 하고 글을 통해서야 돌아보는 먼 기억 속에 남기려나 싶었다.



몇 년 뒤, 그들은 여러 번 재회한다. 가까워지려다 다시 멀어지곤 한다. 신기한 건 끝나진 않았다는 거다. 끊어질 듯 말 듯, 안생이 안정된 삶을 살고 칠월이 자유를 찾아 떠나게 되었을 때조차 관계는 이어진다. 내가 생각한 소울메이트는 서로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잘 알고 어느 상황이던 예전과 같은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처음 누군가를 친구라고 생각하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런 사람을 바라왔다만 어릴 때와 달리 시간을 온전히 공유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예전보다 깊은 사이는 더 어려워졌다.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끼어들지 않은 어릴 때조차도 어려운 일이었다.



어린 시절 늘 함께였던 칠월과 안생은 어른이 되어서도 각자의 삶에 늘 서로가 살고 있었다. 금이 간 신뢰조차 갈라놓지 못할 만큼 상대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갈등이 있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도, 칠월이 안생에게 말했던 것처럼 '너는 나의 전부'였다. 살아온 날을 공유한 게 너무 많아서,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생각과 감정을 가장 많이 얘기하고 이해한 사람이라서 신뢰가 깨진 후에도 다시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둘은 몸은 멀리 있지만 한 사람처럼 삶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은은한 화면과 가사 없이 울리던 음악들에 묻혀 본, '널 나보다 사랑할 수 없는' 사실을 안 뒤에도 팔을 내어준 안생과 안생의 팔에 누워 눈물짓던 칠월을 떠올리며 <칠월과 안생>의 뒤표지를 영화와 함께 덮는다.



안생이 가명에게 말한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가 영원한 건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나도 모르게 남에게 선을 긋게 되기도 하고 평소에 잡다한 이야기는 많이 하면서도 내가 정말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 사람과 다른 것 같으면 꺼내지 않는다. 싸울 일을 만들지 않으려다 오히려 타인에게 상처를 줄 일이 많아지는 듯 싶기도 하다.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상대가 노력하지 않는 것에 상처받고 여러 관계들을 끝내 왔다. 지금 곁에 있는 이들은 그 순간을 넘었거나, 아직 오지 않았거나, 어쩌면 서로의 성격을 파악하고 암묵적으로 합의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안생과 칠월을 보며 긴 세월 함께하는 소울메이트는 노력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처럼 이어질 수 있는 관계는 분명 엄청난 행운이라 앞으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지금 내 옆에는 오랫동안 있다는 사실로도 행운인 사람들이 있다. 매사 서로를 이해하거나 함께 있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우리가 여전히 서로의 삶에서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소울메이트가 아닐까 한다.

   


둘은 싸우고 의심하는 동안에도 진심이었다. 가시 돋친 말을 던지면 후회했고 서로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역시 그러려니, 하고 포기하게 될 때에도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남던 익숙한 미련이 그들을 볼 때에도 떠올라서 왠지 지난날 어디선가 존재했던 듯 낯설지 않아 뭉클하게 보았다. 한국 제목에 '안녕'이 들어간 이유는 같은 말로 만남과 헤어짐을 잇는 우리말의 묘미가 아닐까. 제목을 보고 칠월과 안생을 알았고, 다시 제목을 보며 이들을 보낸다. 덕분에 인간관계에 대한 오래된 미련을 꺼내 물끄러미 보다가 이제야 펼쳐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데 놀랐고 많이 구겨져 있어서 손대기 두려웠다. 안생과 칠월이 계속 서로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어 고개를 파묻으니, 친구에게 가졌던 첫 기대처럼 설렐 정도로 부드러웠지만 긴 세월에 많이 상했다. 생각보다 끌어안은 기억이 따듯해서 앞으로도 종종 펼쳐 도닥거려야겠다. 지난 나와 앞으로의 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조금씩 솔직해지자.
 


요새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언니랑 이야기를 많이 하 속마음을 드러내기 전 쉽게 포기해버리는 나를 지금까지와 다른 관점에서 알아가고 있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칠월과 안생의 미소가 마음 깊이 남은 이유는 계속 나를 보이고 다른 이를 받아들여보라는 용기를 주었기 때문일까. 평생을 함께 해오고 모든 일을 공감하는, 내가 유일하게 솔직하게 대하는 언니와 이 영화를 같이 보아서 좋았다. 방금 전에 짜증냈지만 그래도 여기서나마. 만약 언니가 이 글을 읽게 되면 오글거린다고 길길이 뛸 것 같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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