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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u Nov 25. 2017

마주 보기 / 영화 <빛나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


                                                                                

<빛나는>의 두 주인공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의 음성 해설을 쓰는 미사코와 시력을 거의 잃은 사진작가 나카모리다.


배리어프리 영화에 음성 해설을 넣는 편집 과정에서 해설자인 미사코와 시각 장애인 평가단 나카모리의 마찰로 이야기가 이끌어진다. 시각을 공유할 수 없는 둘은 대화를 통해 감각과 느낌을 공유하며 같은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각장애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미사코와 시력을 잃어가며 좌절하는 나카모리는 황혼이 찾아오듯, 온 사물들이 어둠에 안기기 전 빛과 어둠의 경계 위에 있게 될 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함께 어둠을 맞이한다.


                                                  


<빛나는>이라는 제목처럼 많은 햇빛이 화면의 곳곳을 비추었다. 나카모리가 볼 수 있는 빛을 마지막으로 한 아름 쏟아붓듯이, 그래서 빛이 사라질 때 흔한 길거리 위가 유달리 어둡게 느껴졌다. 빛들은 나카모리가 미사코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찬찬히 어루만지던 손끝처럼, 인물들의 머리와 어깨, 눈 코 입을 오로지 감각만을 가진 존재처럼 하나하나 스쳐보고 길게 미련을 남기며 바닥으로 떨어지곤 했다. 


음성 해설사가 들려주는 듯한 세밀한 화면 컷들이 아름다웠다. 글이 아니라 화면이었음에도 일본 소설 한 편을 읽는 기분이었다. 음악은 손으로 만져질 것처럼 세심하게 스며들었고 나뭇잎 끝의 갈라진 틈까지도 바람에 일어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현실 속 실제 풍경을 보는 듯했다. 빛에 반짝이는 강물과 클로즈업된 사람들의 눈동자, 빛 속에서 사라지던 인물의 이목구비가 눈을 감으니 영화가 끝난 지금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아름다운 화면 너머 이야기들은 공감이 잘 안 됐다. 미사코의 장면 묘사를 들은 사람들이 '그 세계를 상상하는데 말로 그 세계가 좁아진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라며 날카롭게 평가하자 미사코는 울었다. 상황이 안타깝기도 했고, 묘하게 미사코가 참아야 하는 분위기가 잘 이해가 안 됐다. 이대로면 방해만 된다고 한 나카모리의 말은 사실일지 몰라도 처음 보는 사람이 무례한 말로 화를 돋운 상황에서도, 미사코는 오히려 해설자가 자주 받지 못하는 냉정한 평가에 감사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미사코만 일방적으로 감사해야 하는 상황 이해가 어려웠는데 영화 스토리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특유의 문화가 이해가 안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인물이 처한 상황에 공감이 되지 않아 화면의 아름다움들은 눈으로 그저 흘러 넘기기도 했다.

또한 인물들의 나이차가 집중을 흩뜨러트렸다. 배우들의 실제 나이 차이가 거북했고, 이 영화 속 영화(사막을 걸어 올라가는)의 주인공들도 나이차가 상당히 났다. 주인공들이 연애감정을 느끼는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키스 장면에서는 지금까지 이입한 감정들이 다 깨버려 빛 속 환상에서 갑자기 현실로 돌아올 정도였다.
                                                  

                                                                                            

개봉 전 음성 해설 평가단이 미사코의 해석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장면은 인상 깊었다. 두 인물 또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볼 수 없는 시선을 그려보고자 노력했던 미사코의 해설이 완성되고 니카모리는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게 되자 자신에게 분신과 같은 카메라를 던졌다. 나카모리가 미사코에게 더듬더듬 다가가는 <빛나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들이 마주함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희망이 드러난다.


카메라는 앞이 보이지 않는 나카모리의 시야를 자주 보여준다. 주황빛만이 밝게 들어오는 장면은 이 영화에 자주 나타나던 황혼을 닮았다. 그의 시야에서, 그가 촬영한 사진에서, 미사코의 엄마 위로, 미사코와 나카모리의 틈새로 해질녘이 자주 밀려들었다. 이래저래 정서상 맞진 않았지만 컷들은 참 아름다웠던, 해질녘을 담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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