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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u Aug 19. 2017

누구에게나 대화는 필요하다

더 테이블 - 김종관 감독


우리는 언젠가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대화를 통해 만남의 문을 연다. 마주하는 타인은 새로운 시작이거나 마지막으로 만날 사람이기도 하다.


<더 테이블>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한 타인 두 명의 이야기를 하루 동안 네 번 보여준다. 사람들이 있을 때면 테이블 위를 떠도는 공기는 숨 쉬는 사람들에 따라 다른 모양을 띄었다. 마주하고 앉은 사람들의 대화 속에 들어가 누구나 한 번씩은 다양한 이유로 마주했을 법한 눈치 없고, 주저하고, 다정하고 아쉬워하는 분위기에 공감하며 찻잔을 만지작거리던 주인공들의 눈을 상대방 대신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마주한 이들이 어떤 사이인지는 대화를 통해 유추할 수 있었다. 아직 나조차 이 영화를 보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초반에 자리에 앉은 이들은 나랑 같이 어색해하던, 한 때 연인이었던 사이다. 유명한 연예인이 된 여자와 그녀가 신기한 남자. 남자만 보면 참 한심하고 지질한 옛 연인이구나 싶은데 여자를 보면서 아쉬운 마음 이상으로 마음이 공허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사라진 것이 눈앞의 남자가 아니라 예전 추억의 무언가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아 찾아오는 허탈함이 알지도 못하는 이들 위로 그려졌다. 어느새 자리가 익숙해진 그들만큼이나 영화에 집중하게 되었던 첫 번째 대화였다.


다음은 한순간 인연이라 생각했지만 곧 끊기고 다시 만난 사람들이다. 아예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여자와 점점 안절부절못하던 남자를 보며 어떤 행동을 했길래 여자가 저리 어색해할까 싶었는데, 이야기를 보니 공감이 되었다. 불편해하는 여자를 보며 곧 일어나겠구나 생각했지만 잠시 뒤 그녀는 웃었다. 같은 장소, 같은 사람, 짧은 시간이었는데 흐름을 바꾸는 건 오래 쌓아온 마음이고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느냐가 대화가 할 일이었다.


창에 점차 노란빛이 스밀 무렵, 연인이 아닌 가짜 모녀가 등장한다. 특이한 소재라 그런지 다른 이야기보다 각자의 이야기가 조금 더 드러났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옆에 앉은 아저씨가 괜히 분주해졌고 나 역시 눈가를 만지작거리며 바라보았다. 듣기 좋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용건을 말하는 젊은 여자와, 눈가가 다정하던 가짜 엄마의 짧은 만남에서는 사기라고 부르기 미안할 만큼의 진심이 잠시 동안 오갔다.


하루의 끝에서는 미련이 남은 과거의 연인이 문을 열었다. 한 번 더 매달리는 여자와 뿌리치는 남자.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몇 번이고 뒤돌아보는 쪽은 남자다. 상황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걸 알려주던 한 때의 인연이었다. 모든 걸 선택할 수는 없지만, 선택해야 하는 것에서는 판단하고 책임을 지는 게 어른이구나 싶어서 이들의 이야기가 영화관을 나오면서 지금까지 머릿속에 맴돈다. 대화는 문을 닫고 나간 뒤 카페 밖에서도 꽤 오래 진행되었다.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는 그들이 떠난 카페의 유리창 너머로 주연들이 떠나며 막을 내렸다.

                                                                                                

영화는 카페 안 대화 장면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없는 순간도 자주 비춘다. 테이블 위 물컵에 담긴 꽃이 얼마나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는지, 창에 부딪히는 빗방울들이 맺히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리는 모양이나 다음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찻잔을 닦는 손길의 정성이라던지. 아마 카페 안 가구들만이 관심 있게 지켜볼 것들을 카메라를 통해 처음으로 같이 관찰해보았다. 사실 낯선 풍경보다 그것들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 더 새삼스럽다. 꽃은 치워지고 빗방울은 흐르고, 찻잔에는 새로운 음료가 담긴다. <더 테이블>은 사라진 것들과 자리를 대신하는 존재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대화가 끝나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아도 나름대로 의미를 찾아 빈자리에 놓고, 새로운 장소에서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모두가 떠난 테이블을 바라보며 이별이 항상 우리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달라진 대로, 미련이 남는 대로 떠나보내고 미소 짓는 사람들을 자리 위에 다시 그려본다. 덕분에 앞으로 살면서 내 앞에 놓일 테이블 위에도 익숙한 이야기가 떠돌 때 이들을 떠올리며 조금은 더 덤덤하게 앞날을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사회를 통해 개봉 전에 메가박스 이수에서 관람했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고 카페 안에서만 진행되는 전개로도 충분했던, 관람이 만족스러운 영화다. 배우들이 대부분 유명한 사람들이라 몇 처음 보는 배우들이 어떤 이들일지 궁금했는데, 다들 배우가 아닌 그 사람이 되어서 좋았고 배경이 안 변하는데도 사람들도 자주 웃었을 만큼 지루하지 않고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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