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대로 끝까지 버텼다.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대회 전날.
오늘도 익숙한 실습장에 들어서며,
평소처럼 연습부터 시작했다.
오전엔 마지막 점검 겸 연습,
그렇게 연습을 마친 오후엔 하나하나 도구를 닦았다.
스탠볼, 돌림판, 자, 마지팬도구 등 반짝이게.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한 실습장이었다.
불과 한 달 전,
나는 여기에 다시 돌아와 있었고,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온몸이 쑤시도록 연습해 왔다.
정신없이 흘렀던 그 시간들이 이제 고요히 멈춰서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도구를 정리하면서 새삼 느껴지며
그동안 사용했던 도구를 천천히 만져봤다.
'내가 이걸 처음 만졌을 땐 진짜 아무것도 몰랐는데....'
하루하루 쌓인 손의 기억.
어설펐던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겹쳐 보이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만두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뿌듯했다.
"수민아, 너 진짜 고생했다.
지방, 전국대회도 모자라 이제는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내일은 온몸을 다해, 후회 없이 해보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온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다부졌다.
그날 밤,
기숙사에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서울로 떠나는 날.
짐을 챙겨 실습장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가자,
스승님이 조용히 다가오셨다.
'이제 대회장으로 가야지?'
말은 덤덤했지만,
그 눈빛은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담고 있었다.
“수민아,
이제 서울로 가야지.
길 잃지 말고, 떨지 마.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
지방, 전국이랑은 다르다.
국가대표 선발전은 단 한 번뿐이야.
정신 차리고, 잘하고 와라.”
말없이 내미신 손.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악수를 했다.
손끝에서 전해진 그 온기가,
마치 나를 감싸주는 담요 같았다.
긴 여행가방 하나, 도구가방 하나.
그 두 짐에 내 지난 한 달의 땀과 집중이 다 담겨 있었다.
서울 남부터미널.
그리고 대회장소인 한국직업전문학교.
도시의 공기마저도 오늘따라 낯설고 긴장감이 서려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숨을 고르고
작업대로 걸어가 도구가방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하나하나 빠진 게 없는지 확인했다.
익숙한 실습장이 아니기에 더욱 꼼꼼하게 점검했다.
화장실에 가서 대회용 가운, 앞치마를 갈아입고
작업화를 신고 모자, 머리망, 마스크까지 완벽히 착용했다.
대회장엔 이미 긴장감이 흘렀다.
심사위원님들이 오시고,
대회 규정과 주의사항, 재료리스트까지 조목조목 설명해 주셨다.
“필요한 재료가 부족하면 더 드릴 수 있으니,
눈치 보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그 말에 괜히 안심이 됐다.
'세팅 시간 드릴게요. 준비되시면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가방을 열었다.
늘 연습했던 대로 스탠볼은 아래, 돌림판은 오른쪽 도구함은 왼쪽.
도구들을 빠르게 정리하며 마음을 다 잡았다.
세팅을 마치고, 드디어 심사장님이 소리쳤다.
“자, 지금 시각 9시입니다.
모두 시작하세요!”
심사장님의 목소리와 함께
국가대표 선발전 대회 시작 됐다.
곧바로 과제표를 확인했다.
"마지팬 동물 닭 2마리, 사자 2마리"
‘ 닭과 사자?!’
가장 자신 있던 두 동물이었다.
속으로 ‘오늘은 운이 따르네....’ 중얼이며
곧바로 시트를 자르고, 크림 샌드 후 1차 아이싱.
가나슈 만들고, 초콜릿플라스틱 반죽 만들어 냉장.
2차 아이싱 후 다시 냉장고에 넣고
그 사이 마지팬으로 닭과 사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온몸은 긴장으로 굳었지만
손끝은 훈련 때처럼 차분했다.
“하던 대로... 실수 없이, 하던 대로만....”
그리고 마침내, 초콜릿 플라스틱 작업.
말랑할 때까지 치대고
조심스럽게 밀어 펼치고
디테일 하나하나 정성스레 잘라 붙였다.
내가 만든 에펠탑 장식물에
심사위원님 몇 분이 다가와
오래도록 바라보셨다.
뭔가 묘한 기류.
긴장감이 몰려왔다.
마지막 케이크 조립,
초콜릿플라스틱, 마지팬, 초콜릿 꽃을 조심스럽게 올렸다.
한 호흡, 두 호흡...
제출 완료.
“하... 끝났다...”
그제야 손에 쥐고 있던 힘이 풀렸다.
설거지와 뒷정리를 마치고
결과 발표를 기다렸다.
30분 후.
심사장님이 무대 앞으로 모두를 부르셨다.
“3등 OOO,
너무 잘했지만 규정 미흡으로 감점.
2등 OOO,
다 잘했는데 디테일이 조금 부족.
그리고...
1등 국가대표 홍수민.
케이크 파이핑, 초콜릿플라스틱, 마지팬까지
모든 게 균형감 있게 조화롭고
디테일까지 완벽했어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박수 소리.
눈물이 핑 돌았다.
“드디어.... 국가대표가 됐다....”
그 순간,
카메라 하나가 내 앞에 다가왔다.
“혹시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네? 아.. 네... 가능합니다.”
긴장이 가시기도 전에
마이크를 잡고 카메라 앞에 섰다.
“국가대표가 된 소감이 어떠세요?”
“사실, 안 될 줄 알았어요.
다들 너무 잘하시고, 경험도 많으셔서...
그래도 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와서 너무 기쁘고 얼떨떨합니다.”
“그동안 힘든 과정도 많았을 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정말 힘들었어요.
초콜릿플라스틱만 봐도 토할 것 같고,
손끝은 다 갈라지고, 잠도 못 자고....
그런데도 했어요.
왜냐하면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게 제 전부였어요.”
인터뷰가 끝난 후
심사위원님, 도우미들,
그리고 멀리서 와준 친구까지
모두의 축하를 받았다.
아직도 실감은 안 났지만,
지금 이 손끝에 남은 잔열,
떨리는 다리,
그리고 쿵쾅대는 심장 소리가
나에게 속삭였다.
“수민아, 너 해냈어.
진짜 국가대표가 된 거야.”
정신없는 뒷정리까지 끝내고
조용해진 대회장을 나오자
햇살이 눈부시게 비쳤다.
서울의 늦은 오후,
그 빛이 내 어깨를 감싸는 듯했다.
나는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단 한 사람,
스승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대회 끝났습니다!
방금 결과 나와서 알려드리려고요.
저 국가대표 됐어요.'
순간, 전화기 너머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터져 나오는 환한 목소리.
'진짜냐?
우리 수민이 해냈네!
고생했다, 정말 고생했어.
얼른 대전으로 내려와!
오늘 저녁은 무조건 내가 산다.'
그 한마디에
긴장이 풀리듯
웃음이 났다.
서울역으로 향하며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바라봤다.
그 그림자 안에는
내가 걸어온 수많은 새벽과 밤,
실패와 성공,
포기하지 않은 날들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내가 찾고 싶었던 단 하나의 이름.
나는 국가대표다.
'국가대표'
그 단어가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