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국가대표 훈련 6개월

손에 남은 흉터, 마음에 남은 기술

by 붕어빵숨니


1부. 첫 만남, 그리고 다짐


국가대표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각 직종의 지도위원님들과 국가대표 선수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 다가왔다.

장소는 경기도 성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본부 강당.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곳곳에서 들려오는 말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
낯선 사람들의 발걸음이 뒤섞인 복잡한 공기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살짝 굳었다.

그때, 대회 담당자님이 환한 미소로 다가오셨다.

'테이블 위에 직종이랑 성함이 적혀 있으니
해당 자리 찾아서 앉아주시면 됩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제과제빵직종 홍수민'이라고 적힌 명찰이 놓인 테이블을 찾았다.

그 자리에 조용히 앉으려던 순간
옆자리에 앉아계신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분이 바로,
앞으로 6개월간 나와 함께 할
제과제빵 직종 지도위원님이었다.

나는 제과제빵 직종 지도위원님께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지도위원님도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건네셨다.

짧은 첫인사 뒤,
우리는 가볍게 자기소개를 주고받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양한 직종_시각디자인, 워드프로세서, 목공예 등
각 분야 지도위원님들과 국가대표 선수들도 마주 앉아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공간엔,
설렘보다 무게감 있는 긴장감이 깔려 있었다.

'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뽑힌 국가대표 선수들이구나'

나도 그중 한 명이라는 게
살짝 실감 났다.

잠시 후,
무대 위로 올라선 대회 담당자님이
훈련 일정, 훈련일지 작성, 훈련비 지급 등
실무적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고,
그렇게 국가대표 훈련 오리엔테이션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2부. 기술, 고통, 그리고 반복


몇 주 후, 드디어 훈련 첫날이 다가왔다.

전날부터 긴장돼서인지 잠도 설쳤다.

이른 아침,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내내 손끝이 땀이 났다.

서울남부터미널에 도착해
한국호텔직업전문학교 앞에 서자,
지도위원님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수민아, 잘 왔어.
오늘부터 잘해보자.'

그분의 인도로
부지도위원님께 인사드리며

간단히 소개를 마쳤고,
나는 앞으로 6개월간
이 두 분의 지도를 받으며 훈련을 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가장 뜨겁고 가장 외로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설탕공예, 초콜릿 공예,

초콜릿 봉봉(속을 채운 프랄린 초콜릿).
모두 낯설었다.

아니, 생소한 걸 넘어서
처음엔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내가 해왔던 건
케이크, 마지팬, 초콜릿 플라스틱까지였는데,
이번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의 과제는 전혀 달랐다.

주어진 과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설탕공예 + 초콜릿공예 + 초콜릿 봉봉을 한 작품 안에
모두 담아야 했다.

세 가지를 따로따로 만드는 게 아니라,
'봄'이라는 주제 안에서 조화롭게 하나로 융합하라.

설탕으로 만든 기둥과 리본,
초콜릿으로 표현한 꽃과 줄기,
이 모든 걸 한 작업대 위에 조화롭게 올려야 하는 미션이었다.

보통은 설탕공예는 설탕공예대로,
초콜릿은 초콜릿대로 따로 작업한다.

하지만 이번엔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한 문장 안에 녹여야 하는 미션 같았다.

그리고,
그 세 가지 중 나는 두 가지를 특히 싫어했다.

설탕공예, 초콜릿공예.

무겁고,
딱딱하고,
쉽게 깨지고
온도에 너무 민감하고,
한번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정말 고통스러운 기술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맡게 된 부지도위원님은 그 반대였다.

그분은 이미 설탕공예와 초콜릿공예의 고수였다.

국내외 제과 대회 수상경력은 기본,
지금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셨다.

심지어 나보다 한 살 어리셨다.

하지만 그분의 실력과 내공은
내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처음엔 나도 기가 죽었다.

솔직히 말해,
장애인기능경기대회와

기능경기대회(비장애인)의 수준 차이가 엄청났다.

거기다 나는 아직 설탕공예 같은 기술은

처음 배우는 단계였고,
그분은 이미 완성된 실력을 갖춘 전문가였으니까.

'내가 감히 여기에 껴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스쳐 갔다.

하지만 그분은 나를 무시하지도,
어렵게 대하지도 않았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내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 주셨고
실습 때는 내가 실수하더라도
끝까지 기다려주셨다.

그리고 그 훈련의 시작은,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설탕공예’였다.

손끝을 찌르고,
녹이고,
불을 다뤄야 했던 기술들.

나는 다시, 제로에서 출발했다.

설탕공예는
익숙해지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손을 뿌리치듯
낯설어졌다.

한 번의 실수는 곧 작품 전체의 붕괴를 의미했다.

기회는 늘, 단 한 번 뿐이었다.

조금만 각도가 틀어져도,
조금만 힘 조절을 잘못해도
‘탁’ 하고 깨져버리면 그걸로 끝.

다시 붙일 수도,
다시 살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설탕공예는
마치 아기 다루듯 해야 했다.

조금만 거칠어도 깨지고,
조금만 습기가 닿아도 망가졌다.

예민하고,
까다롭고,
솔직히 말하면 너무 짜증 났고,
너무 힘들었다.

어느 날 연습 중,
설탕을 끓이던 냄비 안에는
스패튤라가 꽂힌 채로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냄비 손잡이를 들어 옮기려는 순간

그때였다.

냄비 안에 꽂아둔 스패튤라가
무심코 든 손잡이의 각도에 따라 휘청이더니,
다음 순간
뜨거운 설탕이 묻은 면이
내 엄지손가락 옆을 그대로 덮쳤다.

'아!...'

비명이 나올 새도 없이,
순식간에 살이 익는 듯한 고통이 올라왔다.

타들어가는 듯한 쓰라림,

맹렬하게 부풀어 오르는 화상 부위.

곧장 병원에 갈 시간도,
아플 겨를도 없었다.

나는 곧장 약국으로 달려가
화상연고와 메디폼, 방수테이프를 사서
작업장으로 돌아와 응급 처지를 했다.

쓰라림이 가라앉지 않았고,
심하게 떨렸지만
바로 다시 작업대로 향했다.

설탕은 굳히기 전에 다뤄야 하니까.

아프다고 멈출 수는 없었고,
실수했다고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물집이 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내 손등을 바라보며,
나조차 안쓰러워졌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해야 하지?’

화상을 입고도 연습을 멈추지 않는 내가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이유는 너무 분명해서 더 슬펐다.

그렇게 남은 훈련 기간 동안,
나는 매일 같이 손에 방수테이프를 붙이고

화상 자국을 덮은 채로 작업대 앞에 섰다.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도 수 없이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제과제빵직종 국가대표'라는 꿈.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신력이 꺾여서 무너지는 일만은
절대로 없게 하고 싶었다.

지금도 내 엄지손가락에는
그때의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다.

화상 자국이 흉터로 굳어버린 자리.

그건 나에게 있어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내 기술이 깃든 증거이자,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향해
견뎌낸 시간의 흔적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지나
조금 더 단단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3부. 렌즈 앞의 진심, 마음에 피어난 봄


그러던 어느 날,
훈련장이 유독 분주했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KBS '장애인의 날' 특집 다큐멘터리팀이
나의 훈련 과정을 촬영하러 온 날이었다.

카메라는 설탕공예 앞에서 멈칫거리는 내 눈빛,
지도위원님의 지시에 집중하는 내 표정,
초콜릿을 조심스럽게 붙이는 내 손끝을 담았다.

인터뷰도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요?”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엄마였다.

나는 카메라 앞에서,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진심은 분명히 닿았다고 믿는다.


4부. 나는 '제과제빵직종 국가대표'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어느 순간,
작품이 ‘연습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결과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설탕공예도
초콜릿공예도
초콜릿 봉봉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5개월이 지나자
기술도 쌓였고,
무엇보다 멘탈이 단단해졌다.

돌아보면
6개월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
늘 혼자 밥을 먹었고, 연습도 혼자였다.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었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작업만 한 날도 많았다.

한밤중,
조용한 작업장에서 몰래 눈물을 삼켰고,
고시원 좁은 방,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소리 없이 울었다.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그날의 울음은
나에게 가장 깊은 격려였다.

하지만 이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걸 해냈다고.

그리고, 나는 국가대표였다고.

완성된 작품 앞에 섰을 때,
수없이 반복한 연습, 깨어진 조각들,
터지고 아물기를 반복한 화상 자국들,
혼자서 흘린 눈물들이
모두 다 내 안의 ‘봄’을 피우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품이 완성된 날,
손끝에 아직 아물지 않은 화상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마음속엔,
그보다 훨씬 더 단단한 것이 피어나 있었다.

설탕과 초콜릿으로 만든 그 작품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10년이 지나도 손에 남은 화상 자국처럼,
그 시간은 내 삶에 깊이 새겨졌다.

그날, 내 안의 봄이 피어났다.

뜨거웠던 시간,
남은 화상 자국,
그리고.....

나는 국가대표였다.





설탕공예 기둥, 화분
초콜릿 봉봉
설탕공예 '리본'
초콜릿 '꽃'
설탕공예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