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너머의 나, 그리고 봄이 완성되던 순간
1부. 카메라 앞, 진심을 담다
훈련장이 유난히 분주하던 어느 날.
지도위원님은 평소보다 더 조심스럽게 장비를 정리하고,
부지도위원님은 작업 동선을 꼼꼼히 확인하고 계셨다.
나 역시 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다.
왜인지 마음이 조금 들떠 있었다.
그날은 바로,
KBS 다큐멘터리 촬영이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그 이후로도 촬영은 총 네 번에 걸쳐 진행됐다.
훈련 일정과 겹치지 않도록 조율하면서
며칠에 걸쳐 다큐멘터리팀은
카메라, 마이크, 조명 장비를 챙겨 들고
우리의 익숙한 훈련장을 조용히 오갔다.
낯선 카메라와 낯익은 작업대.
그 사이에서 나는 내가 가장 익숙한 ‘작업’으로
내 진심을 보여주고자 했다.
처음에는 긴장감이 앞섰다.
‘내가 이 모습 그대로 카메라에 담겨도 괜찮을까?’
‘실수라도 하면 어쩌지...’
머릿속엔 걱정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하지만 렌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초콜릿을 자르던 손끝,
설탕공예 앞에서 잠시 머뭇대던 눈빛,
지도위원님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가던 내 모습까지
모두 조용히 기록되고 있었다.
내 손끝이 담기는 그 순간들.
나는 점점 평소의 리듬을 되찾았다.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을 진짜로 남기고 싶어서’
나는 그저 내 작업에 몰두했다.
2부. 카메라 앞에서, 내 마음을 말하다
며칠 뒤, 촬영은 인터뷰로 이어졌다.
PD님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작업 끝나면, 인터뷰 잠깐 괜찮을까요?”
나는 앞치마를 정리하고,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조명과 카메라, 마이크 앞에서 숨을 고르며 앉았다.
첫 질문이 던져졌다.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장애인이다 보니,
사람들은 제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과기능장을 따서,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어요.”
말을 하면서도
내 안에서 무언가 단단히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건 자신감이자, 의지였고
어쩌면 지난 시간들을 관통하며 얻은
작은 신념이기도 했다.
다음 질문은 이렇게 이어졌다.
“국가대표로 선발됐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정말 감동이었어요.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너무 우셨어요.
‘잘했다’고, 정말 잘했다고 하셨어요...”
울컥했다.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다음 질문이 마음을 건드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엄마요....
저를 정말 힘들게 키우셨는데,
그래서 더 감사해요...”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눈물이 쏟아졌다.
PD님은 살며시 웃으며
“울보 국가대표”라는 별명을 붙여주셨고,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 별명, 마음에 들었다.
며칠 뒤 다시 이어진 촬영.
또 다른 인터뷰가 시작됐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요?”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말을 좀 어눌하게 하다 보니
‘발음 왜 그래요?’
‘외국인이에요?’
그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거든요...”
그 순간, 꾹꾹 눌러왔던 것들이 터져버렸다.
다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엔 부끄럽지 않았다.
이 눈물은 연약함이 아니라,
끝까지 견뎌낸 나의 증거였으니까.
그 며칠 간의 촬영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내 훈련의 과정, 나의 진심,
그리고 ‘국가대표’라는 꿈을 향한
모든 열정이 천천히, 그리고 선명하게 새겨졌다.
3부. 마지막 훈련, 그 끝에서 피어난 봄
6개월이라는 훈련의 끝자락.
지도위원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이 마지막 훈련이네.
마지막 점검하고 마무리하자.”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안도와 아쉬움, 긴장과 기대가
복잡하게 얽혀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날은 단순한 마무리가 아니었다.
프랑스로 출국하기 전,
‘이 기술을 정말 내 것으로 만들었는가’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설탕공예의 곡선,
초콜릿봉봉의 매끄러운 코팅,
작품의 구조와 색감.
그 모든 디테일이
내 지난 시간의 집약이었다.
지도위원님과 부지도위원님은
세심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지적했고
나는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마지막 점검을 마쳤다.
그리고, 짐을 쌌다.
설탕공예용 몰드, 도구, 플라스틱서랍장, 장비까지
모든 것을 정성스럽게 챙겨
파란 박스 안에 담았다.
학생들과 부지도위원님이
하나하나 도구를 닦아주셨다.
마치 본인들이 출전하는 것처럼,
내일처럼 함께 해주셨다.
그렇게 쌓인 파란 박스만 5박스.
6개월의 모든 시간이 고스란히 그 안에 담겼다.
짐을 정리하면서
좁은 고시원 방도 다시 떠올랐다.
혼자 밥을 해 먹고,
혼자 울던 밤.
밤늦게 돌아와
이불을 덮고 소리 없이 울었던 기억.
그 시간들 덕분에,
나는 마음도 체력도 단단해졌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시간들을 견뎌냈다고.
그리고 나는,
국가대표였다고.
그렇게 한 단계씩 올라와
뒤를 돌아보니,
그 길 위에는 눈물과 고통,
그리고 봄처럼 피어난
단단한 나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