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솨제빵직종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다.
베이커리 첫 직장,
신세계 SVN 오산 이마트 베이커리.
1년 6개월의 여정을 끝으로,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많은 걸 배웠고,
많이 성장했다.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며 협업하는 법,
오븐 타이밍을 보는 감각,
정신없이 돌아가는 대형 베이커리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나는 온몸으로 익혔다.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몸에 남은 기술 하나쯤은
언젠가 인생의 무기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기술이라는 건,
한 줄짜리 이력서보다 훨씬 묵직했다.
특히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기술 하나로도 버틸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게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이마트를 퇴사하고 나서
나는 나만의 시간을 회복했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여행.
2박 3일,
아무에게도 구속받지 않은 시간 속에서
비로소 나 자신을 만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마침,
그 타이밍에 스승님께 문자가 왔다.
'수민아,
마침 이마트 퇴사했지?
지금 SPC 파리크라상에서 장애인 맞춤훈련도 하고 있는데 지원 한번 해보렴.
이번에 국가대표 선발전도 준비해야 하니까
대전으로 한번 내려오렴.
자세한 건 와서 얘기하자.'
문자를 읽고 나니,
한쪽에선 알 수 없는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왜 하필 또 SPC 지....
또 개인 빵집은 안 보내주시려고 그러시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거였다.
내가 개인 빵집 간다고 하면 또 화내실 거란 걸.
그래서 담담하게, 짧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다음날에, 대전으로 내려갔다.
대전직업능력개발원.
익숙한 건물, 익숙한 실습장, 익숙한 공기.
스승님은 근엄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수민아,
공고문 한번 읽어봐.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끝나고도 취직까지
바로 연결되니까
SPC 파리크라상 맞춤훈련 6개월 받고,
대회 준비도 병행하고,
끝나면 파리바게트 직영점 입사까지
딱, 타이밍이 좋아.'
나는 알았다.
이건 질문이 아니라, 권유라는 걸.
속으로 중얼거렸다.
'개인빵집 얘기는 꺼내지도 말자...'
짧고 조용하게 대답했다.
결국 다음 주부터 훈련시작.
나는 다시 이곳에 재입학했다.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기숙사 방에 정리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스승님이 나를 부르셨다.
'수민아,
이거 한번 입어봐라.'
건네받은 것은
제과기능장 가운이었다.
뜬금없던 순간.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갈아입고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스승님은
잔잔히 웃으며 말씀하셨다.
'넌 10년 뒤에 무조건 제과기능장 될 거야.'
그리고 내게 포즈를 취하라고 하시더니
기념사진까지 한 장 남겨주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 사진이, 앞으로의 훈련에서
내 마음을 붙드는 힘이 될 줄은.
국가대표 선발전 대회 주제는 프랑스.
과제는 1단 케이크,
가나슈 코팅에 마지팬 또는 초콜릿플라스틱으로 장식.
스승님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건 네가 지방, 전국대회 때 이미 해봤던 거야.
초콜릿플라스틱, 마지팬 조금 더 섬세하게만 하면 돼.'
실습장에 들어가
가장 먼저 초콜릿플라스틱을 꺼냈다.
그리고 지옥이 시작됐다.
나는 초콜릿 플라스틱이 제일 싫었다.
딱딱해서 손가락 관절이 아프고,
밀대로 피기도 힘들고,
모양도 맞춰야 했다.
초콜릿만 봐도 토 나올 지경이다.
근데 또 한다.
왜냐고?
국가대표가 되고 싶으니까
누구는 손 놓을 수 있는 선택이 있지만,
나는 그게 안 됐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하나 만들고 또 만든다.
게다가 이번엔 주제가 프랑스.
내가 만든 장식은 에펠탑.
문제는 길이, 각도였다.
1cm 줄였다가 다시 늘려보고,
1도 줄였다가 다시 되돌리고,
균형이 무너질까 봐 밤늦게까지
초콜릿플라스틱으로 에펠탑을 조각했다.
틀어지지 않게,
무너지지 않게,
에펠탑의 미세한 각도 하나에도
내 눈은 점점 예민해져 갔다.
한밤중.
혼자 실습장에 남아
계속해서 실패하고,
다시 치대고
다시 세우고,
또 실패하고...
손끝이 까지고,
눈이 뻑뻑해지도록 몰입한 끝에
마침내,
딱 맞는 각도를 찾아냈다.
'됐다.....'
에펠탑이 중심을 잡은 순간,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전율이 밀려왔다.
짜릿했다.
이건 기술이 아니라 집념이었다.
이후에도 마지팬 실습이 이어졌다.
지방, 전국대회 때 만들었던 동물보다
더 섬세하게,
더 눈에 띄게, 더 생동감 있게.
이번 대회도 어떤 동물이 나올지 '랜덤'이었다.
그 말은,
어떤 동물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바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오늘은 토끼, 고양이, 호랑이, 사자 등,
오늘은 다람쥐, 닭, 강아지, 곰 등
이런 식으로 매일 다른 동물을 정하고 마지팬을 했다.
어느 순간 내가 마지팬 눈알에 영혼까지 불어넣고 있었다.
'조금 더 귀엽게, 조금 더 섬세하게'
그 조그마한 생명체 하나에 몰입하다 보니,
시간 감각조차 사라졌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일상처럼 보여도,
내 안에서는 뭔가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햄스터처럼 반복되는 훈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국가대표'라는 목표를 향해
묵묵히 나아갔다.
새벽까지
홀로 남아 실습장을 지키며,
버터크림을 만들고,
시트를 굽고,
무게를 재고,
정말 쉼 없이 달려갔다.
그래도,
뒤에서 응원해 주는 훈련생들,
묵묵히 지켜보는 스승님이 있었기에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민아,
국가대표가 되어보자.'
기술만 쌓는 게 아니다.
나를 증명하는 시간이다.
가운을 입었던 그날의 다짐처럼.
지금 이 훈련이
내 10년 뒤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