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한 줄을 위해 버텼던 시간

냉동실에서 깨달은 진짜 이유

by 붕어빵숨니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짧지만 치열했던 여운이 가시기 전에
나는 다시 아침 5시에 눈을 떴다.

현실은 언제나 대회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이른 아침,
오산 이마트에 도착하자
직장 동료들이 박수치며 웃어주었다.

“수민아, 2등 너무 잘했다!”

진심 어린 축하와 따뜻한 인사.

그 순간만큼은
‘그래도 내가 해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결심했다.

"이제는 그만두자."
베이커리에서 버틴다는 건
단순히 기술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체력, 정신력, 감정 조절력까지…
그 모든 게 매일 시험대에 오른다.

이마트는 원래 2, 4째 주에 정기휴무가 있지만,
근무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그마저도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어떤 날은 아침 6시에 출근해
밤 9시, 10시까지 일한 날도 있었다.

그 긴 하루 동안
나는 ‘버텼다’는 말로 하루를 눌러 담았다.

사람들은 좋았다.


청각장애인인 나를 진심으로 배려해 주고
눈을 맞춰 웃어주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런 순간들이 있어서
매일 조금씩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어느 날 냉동생지를 들고
매서운 냉동실 안에 서 있었을 때였다.

문을 여는 순간,
얼굴을 스치는 칼바람에 숨이 턱 막혔다.

목장갑을 두 겹이나 꼈는데도
손끝은 금세 얼어붙었다.

플라스틱 박스 위에
차디찬 생지를 내려놓고
얼어붙은 손등을 바라보았다.

거칠게 터져버린 살갗,
감각이 사라진 손가락,
차가운 공기가 폐 끝까지 박히는 그 공간 속에서
나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분을 서 있다가
문득,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도대체 뭐가 날 여기까지 끌고 온 걸까,
무엇 때문에 나는 이 고된 환경을 견디고 있는 걸까.

내가 버티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력서에 단 한 줄.

그 짧은 문장이 나의 가능성을 결정지었다.

비장애인이었다면 이미 손을 놓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만두고 싶다'는 선택지조차,
내게는 사치였다.

현실은 냉정했다.

장애인, 경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문턱에서 밀려나는 걸 수없이 겪었으니까.

그래서였다.


꽝꽝 언 냉동실에서,
동상처럼 얼어붙은 손을 감싸 쥐며도
나는 참고 또 참았다.

이 생지처럼
내 마음도 차디차게 굳어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경력 하나 없는 사람'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자각은,
슬픔이라기보다는 참담함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이미 조금씩 '퇴사'라는 단어를 품기 시작했다.

우리 셋이서 돌아가던 매장.


사실 정상이 아니었다.

점장님은 매대, 포장, 빵 성형, 컴퓨터 업무까지
또 다른 직원은 피자, 손님 응대
나는 오븐, 케이크, 냉동생지, 다음날 성형 준비...

점심시간도 없었다.

화장실 갈 시간조차 아까웠다.

남은 빵 자투리를 몰래 씹으며,
목이 막혀도 물도 안 마셨다.

그러다 결국, 무너졌다.

우리 셋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2,4째주 정기휴무 때 겨우 하루 쉬는 것조차 벅찼으니까.

이마트 베이커리였기에,
매출은 높고 규모도 컸지만
일할 사람은 늘 턱없이 부족했다.

셋이서 돌아가는 매장은 늘 벼랑 끝이었다.

점장님, 나, 그리고 한 명의 직원.

셋이서 매대를 지키며, 굽고, 만들고...
하루하루가 탈진이었다.

결국 점장님께서 파트장님께

'근무인원 한 명만 보내주세요'

하고 간절하고 요청하셨고,
그렇게 새로 오신 부점장님이 투입되었다.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다.

주 2회 휴무도 가능해지고,
업무 분담도 조금씩 나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부점장님이 오신 지 3개월도 안 되어
점장님께 퇴사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그걸 보면서 알았다.

이 시스템은 사람을 남기지 못한다는 걸.

누구든 버티면 무너지고,
떠나야 살아남는다는 걸.

그리고 나는,
이미 마음속에서 조금씩
내려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쉰 다음날이면
매번 정리가 엉망이었다.

처음엔 ‘바빠서 그랬겠지’ 했다.

하지만 반복됐다.

품질 위생 담당자가 점검하던 날,
냉장 식품이 실온에 있는 걸 발견하곤

“이게 왜 여기에 있어요?!”

혼이 났다.


억울했다.

하지만 부점장님이 한 건데,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그저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꾹꾹 눌러 참다가
드디어, 말을 꺼냈다.

“부점장님, 이 토핑물은 따로 랩핑 해서
냉장고에 넣어주시면 안 될까요...?
냄새도 나고 매번 버리기엔 아까워서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부점장님의 표정이 확 변했다.

그리고...

“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
아, 씨X.......”

장갑이 내게 날아왔다.

너무 놀라고 어안이 벙벙했다.

마치 내가 '문제 직원'이 된 것처럼,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낯설어졌다.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확실히 알았다.

그 길로 점장님을 찾아갔다.

“저…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둘게요.”

당황하신 점장님이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수민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울지 않으려 애쓰며,
그저 작게 끄덕였다.

며칠 후, 파트장님과 면담이 잡혔다.

이야기를 꺼내려던 그때,

소름 끼치게 맞춰 온 연락.

“수민아, 국가대표 선발전 공고 떴단다.
휴무 날 대전 한 번 들르렴.”

정말, 이 타이밍이란.


무너지려는 순간, 새로운 문이 열렸다.

파트장님은 말했다.

“휴직은 어때? 나중에 돌아오면 되잖니?”

하지만 나는 말했다.

“아니요.

전 대회 끝나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진 않을 것 같아요.
아직 어리고,
기술도 더 배우고 싶고
이제는 개인 빵집에서 제대로 부딪혀보고 싶어요.”

그렇게
1년 6개월간의 첫 직장 생활은 끝이 났다.

25살의 나.

신세계 SVN 오산 이마트 베이커리.

이력서에 고작 한 줄이지만,

그 속엔 내 눈물과 성장, 모두가 담겨 있다.

나는 많이 힘들었지만,
사람과 일,

세상을 배웠고
그 모든 시간이
내가 국가대표를 꿈꾸게 한 이유가 되었다.

수민아,
참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참 잘 견뎠어.

너는 그 누구보다 단단했어.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제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국가대표 선발전,
이제 그 무대를 향해, 진짜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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