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주는 곳이 아닌, 내가 선택한 길
실업계 고등학교 디자인과에 다니면서,
나는 딱히 꿈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청각장애인으로서 그저 “받아주는 곳”이면 어디든 취직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담임 선생님이 추천하는 대로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고,
삼성 협력업체의 TV 생산직에 최종 합격해 취업하게 되었다.
하지만 1년 뒤, 회사는 경기가 어려워졌고
결국 부도가 나며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백수가 되었다.
청각장애인을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다.
그 현실을 마주하자 마음이 막막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우편함에 하나의 통지서가 도착했다.
“대전직업능력개발원.”
장애인을 위한 직업훈련 안내문이었다.
무료로 배울 수 있고, 자격증까지 취득하며 취업도 연결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전공은 제과제빵과, 정보처리과, 기계 CAD과, 전자과 등 다양했고
기숙사까지 제공된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종이를 여러 번 찢어 버렸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비장애인들과 함께 공부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장애인들과만 지내는 곳”에 들어간다는 게 너무 싫고, 부끄러웠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백수 기간도 길어지면서
일자리는 전혀 구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그래, 한 달만 다녀보자.”
대전직업능력개발원에 직접 방문해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입학 전, 각 전공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는 디자인과, 전자과, 제과제빵과 이렇게 세 가지를 신청했다.
디자인과는 고등학교 전공이었으니 익숙했고,
전자과는 생산직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제과제빵과는..
솔직히 말하면 이유는 없었다.
그냥 끌렸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좋았고,
나도 모르게 신청하게 됐다.
여러 과 체험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제과제빵과에 들어갔다.
반죽을 둥글리고, 성형을 해보는 시간이었는데
“오? 이거... 너무 재밌는데?”
그때 제과제빵 선생님이 말했다.
“너 손재주 있다. 우리 과로 와라.”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고민했다.
전자과로 갈까, 제과제빵과로 갈까.
돈도 중요했지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어리잖아.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낫지 않겠니?”
그래.
아직 나는 어렸고,
만약 적성에 안 맞으면 다시 생산직 가면 되지.
그렇게 생각한 끝에,
나는 결국 “제과제빵과에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2주 후, 입학했다.
그렇게 나는
23살, 반죽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 순간부터 제과제빵이라는 길 위에,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다음 화에서는 내가 반죽을 했는지
반죽이 나를 했는지 모를 이야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