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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목수가 되는 대신에

송구영신, 사랑 안에 거하겠다는 다짐

by breath in

목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자연의 일부이며 실체가 명확한 재료인 나무를 홀로 우직하게 다루는 행위. 마음 어긋나는 사람들이 끼어들 확률이 현저하게 낮은 일. 그리하여 결과는 더하거나 뺄 것 없이 오롯이 나의 책임인 정직한 직업. 목수로 살면 조금 더 행복할 것만 같았다.


사람에 지쳐서 그랬다. 생각보다 좁은 내 한 품 울타리 밖의 사람들이 궁금한데 궁금하지 않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맞닿아있다. 품 속 사람들을 챙기기도 부족한 마음을 한 뼘 밖까지 뻗기가 어려웠다. 한편으론 까마득하게 먼 곳의 존재들에 속절없이 마음이 쓰였다. 오묘한 모순. 그 사이에서 자주 비틀거리는 한 해였다.


가치가 나란히 따르지 않을 때 무형의 무엇인가에 천착하는 일이 얼마나 덧없어지는지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귀하게 여기던 것들이 희미해져 종적을 감추는 것 같았다. 하선 대신 이함훈련으로 충분할는지, 시야가 또렷해지는 듯하다가도 흐려졌다. 나태와 나약, 미련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꽃이 지는 모습이 지저분한 건 슬픈 일이다. 열매가 뒤따를지라도 말이다.


손재주가 없어 목수가 될 수 없다는 것 역시 슬픈 일이다. 나무 대신 나를 자주 들여다봤다. 평생 나를 빚어왔는데도 여태 알지 못했던 나를 새로 만난다는 게 신기했다. 스스로에게 몰두하는 과정이 괴롭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 삶은 끝날까지 나를 알아가는 여정인가 보다. 매년 생일마다 유서를 쓰기로 하고, 첫 번째 유서를 썼다. 새삼스럽게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나를 조금 더 알게 된 덕분인지 오랫동안 미루어둔 선택도 했다. 사는 동안 내내 주변만 맴돌았던 대상에, 새해에는 나름의 방식으로 한 발짝 다가서는 쪽으로. 인적이 드문 그 길에서 걸음마다 즐거울지, 다른 길을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우두커니 서있는 것 보다야 나으리라 믿는다.


한 해 동안 읽었던 시집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두 권을뒤져 어울리는 시 한 편 찾아 남겨두며, 2024년 안녕.


사과파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은 날들입니다

진심을 다하려는 태도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고
멀리 두고 덤덤히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반으로 갈린 사과파이가 간곡히 품고 있었을
물컹과 왈칵과 달콤,
후후 불어 삼켜야 하는 그 모든 것

사과파이의 영혼 같습니다
나를 쪼개면 무엇이 흘러나올지 궁금합니다

쪼개진다는 공포보다
쪼갰는데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공포가 더 크지만

밤은 안 보이는 것을 보기에 좋은 시간일까요 나쁜 시간일까요

사실 나는 나를 자주 쪼개봅니다
엉성한 솔기는 나의 은밀한 자랑입니다

아무도 누구도 아무도
들어 있지 않은

반대편이 늘 건너편인 것은 아니라고
속삭이는 문

결말은 필요 없어요
협곡을 뛰어넘기 위해 필요한 건 두 다리가 아니에요

여기 이렇게 주저앉아
깊어져가는 계단이면 돼요
단춧구멍만한 믿음이면 돼요

안희연, ‘미결‘. 시집 <당근밭 걷기> 중에서


새해 첫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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