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민크루 Apr 05. 2020

크루즈승무원이 되기까지 - 서면 인터뷰

크루즈에서 만난 취재진 (4) - 큐나드


2020년 1월 세종경제신문에 연재된 기사를 소개한다.


퀸 엘리자베스, 퀸 메리 등 초대형 크루즈를 운영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80년의 역사의 큐나드 선사에 유일한 한국인 승무원이 있다. 서울 출신의 여성 승무원 임수민씨다. 그녀는 현재 퀸 엘리자베스호에 승선해 승무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중이다. 그녀가 세계적인 크루즈의 승무원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승무원으로서의 경험, 에피소드, 크루즈 산업의 전망, 크루즈 승무원 지망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등을 3회에 걸쳐 싣는다.



-. 크루즈 승무원이 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는지요?


제가 좋아하는 요소가 많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면서 더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 그 모든 조건을 흡족 시키는 업계를 선택한 것입니다. 10년 정도 여러 도전을 해오다 보니 평생 직업은 없다는 것을 몸소 느꼈고 심지어는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투자하는 시간이 우리 인생의 절반도 넘는 시간을 차지합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 제 인생을 위해서, 끊임없이 비젼을 찾을 수 있고 새롭게 무언가를 계획할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는 업계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크루즈라는 확신이 들었고, 현장에서 몸소 경험하고자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먼저 선택한 것입니다.


-. 한국인으로서 외국 선사의 크루즈 승무원이 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기약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시기를 긍정적으로 감사하며 기다리도록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첫 선사 스타크루즈에 승선하기 까지는 국비과정을 운영하는 아세아크루즈전문인력양성센터의 유재흥 부장님과 계정운 대리님의 지원이 있었기에 사막에 혼자 나와있는 듯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이후에는 경력을 인정받아 큐나드 선사로부터 직접 제의를 받고 전직하게 된 것이라 굉장히 특별하고 감사한 경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에는 인터뷰 날짜 및 그에 대한 결과, 계약서, 각국 비자, 각종 건강진단, 각종 증빙 서류, 승선 날짜 등,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많았습니다. 그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 지금까지 어떤 선사들에서 일을  했는지요? 승선했던 크루즈의 규모도 소개를 좀 해주세요.


첫 선사였던 겐팅그룹의 스타크루즈(現겐팅크루즈)는 말레이시아와 홍콩을 본거지로 한 그룹의 선사로, 당시에는 아시아 노선만 운행하였습니다. 현재는 호주와 뉴질랜드 노선을 추가, 총 5척을 운행 중이며, 새 크루즈선을 건조 중에 있습니다. 제가 2년간 승선했었던 슈퍼스타버고(現익스프롤러드림)는 약 7만5천톤으로 객실 926실, 승객 최대 약 2800명, 승무원 약 900명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현재 근무하는 카니발 코어퍼레이션 소속 큐나드 선사는 영국 사우스햄튼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북미, 알래스카, 남미, 유럽, 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 아시아, 즉 전 세계를 기준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영국 여왕의 이름에서 따온 퀸 메리, 퀸 엘리자베스, 퀸 빅토리아, 총 3척을 운행 중이며, 2021년에는 또 다른 여왕을 맞이할 예정입니다. 제가 승선 중인 퀸 엘리자베스는 약 9만톤으로 객실 1055실, 승객 최대 약 2500명, 승무원 약 1000명을 소화합니다.


-. 큐나드 선사에 근무하기 전까지는 어떤 일을 했나요?


한때 목관악기 클라리넷을 전공하였으나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사회 경력을 쌓고자 재학 중에 의료기계회사의 마케팅부에 취업하였습니다. 이후, 안정적인 사무직보다 다능인 자질을 살려 줄 직장을 찾느라 10년간 외국에서 웨딩, 호텔, 레스토랑, 피트니스, 초등교육, 통번역 등 여러가지의 경험을 쌓아 왔습니다.


-. 현재 퀸 엘리자베스호에서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무엇인가요?


부서는 퍼서즈 오피스, 즉 크루즈의 호텔 파트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가장 메인 부서입니다. 포지션은 리셉셔니스트, 즉 크루즈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에 관한 창구 역할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간단하게는 현금 및 카드 업무에서부터 입출항 관련 업무, 각종 컴플레인 처리하며 가장 최전선에서 승객을 대응하는 것이 저의 업무입니다.


-. 크루즈 승무원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나 자세는 무엇일까요?


너무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간외교관으로서의 마음가짐이 되어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큐나드 선사의 경우 총 약 5000명의 승무원 중 한국인은 1명, 바로 저 혼자입니다. 스타크루즈 선사의 경우 당시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20명 정도 같은 시기에 승선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각 크루즈선 당 한국인 승무원은 1~3명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전체 승객에서 한국인의 비율을 고려하면 선사의 입장에서는 한국인 승무원의 가치가 없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즉 승무원으로서나 승객으로서나 한국인은 레어템입니다. 레어템으로서 엄청나게 뛰어나지는 못해도 긍정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2편에 계속)





-. 승무원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하루의 스케쥴은 오전에 시작해서 오후에 끝나는 경우도 있고, 점심 즈음에 시작해서 밤늦게 끝나는 경우도 있고, 오전에 시작해서 몇시간 후에 3~6시 시간 정도의 쉬는 시간을 받으면 기항지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몇시간 일하고 밤늦게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 근무 시간이 불규칙한데 따른 어려움이 있을 것 같고, 오래 승선할 때는 지겹거나 답답할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승선 기간 중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합니다. 스케쥴은 매일 다르며, 적게는 7시간에서 많게는 14시간까지 일한 적도 있습니다.

생활은 보통 2인실에서 많게는 6인실에서 합니다. 배마다 포지션마다 세세한 부분은 다르며, 보통은 매니저급 정도 되어야 1인실을 배정받게 됩니다.

어려운 점이라면, 같은 팀에서 근무하고 같은 방에서 생활해야 하는 동료와 맞지 않을 때입니다. 룸메이트를 바꿀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항상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저의 경우 예전에 일하던 곳의 예를 들면, 한달동안 세 번 밖에 샤워를 하지 않는 냄새 나고 게으른 A 동료와 한달을 생활한 후에, 게으르고 여우 같은 B 동료와 두 달을 생활하고 나서야 겨우 가장 친한 친구와 같이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모두 유럽인 등 외국인 동료입니다.

오래 승선해야 해서 지겹거나 답답하기 보다는, 쉬지 않고 매일 일하다 보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예의 없는 승객을 응대하거나 동료에게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는 등의 안 좋은 일이 있을 경우, 다 잊어버리고 뒤돌아서서 다시 즐겁게 업무에 임할 수 있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특히 하선 날짜가 다가오면 빨리 내리고 싶은 마음에다 지친 체력 때문에 어려움이 가중될 때도 있습니다.


-. 항해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있다면?


항해 중에 오픈덱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그 순간이죠. 그 때 만큼은 평정심을 잃을 정도로 무례하고 매너 없었던 승객도, 모든 업무에 슬로 모션을 걸어 놓은 듯한 답답한 동료도, 머리는 간지러워서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안 감는 룸메이트도, 하선 날짜가 한참이나 남았다는 현실도, 가족에 대한 걱정도, 그리움도, 그 모든 것이 매직 스폰지에 흡수된 마냥 다 잊어버리게 되지요.


-. 일반인들은 모르는 크루즈 승무원들만의 소소한 즐거움도 있을 것 같아요.


소소한 것이라면…. 업무 끝나고 마시는 맥주 한잔이나 와인 한잔이 2000원도 안 한다는 즐거움? 승무원 파티가 있어서 많이 마신다 해도 20000원 쓰기도 꽤 어렵다는 즐거움?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아직도 크루즈 여행을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크루즈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크루즈 여행은 꼭 죽기 전에만 한번쯤은 해봐야하는 그런 어려운 여행이 아닙니다. 일년에 한두번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분이라면 그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여행입니다. 크루즈는 이동 수단, 숙박, 휴양, 관광, 식음료, 예술, 오락, 쇼핑 등 여행의 모든 요소를 조리 있게 한데에 뭉쳐 놓은, 그 가치와 편의성을 고려하면 전혀 비쌀게 없는 종합선물세트 여행입니다.


-. 크루즈 여행을 즐기기 위한 팁을 하나 주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방에서 나오세요. 방에만 계시니까 당연히 지루하신 겁니다. 선상신문을 정독하세요. 그 안에 하루 종일 즐겁게 바쁘게 해줄 모든 정보가 다 적혀 있습니다.

다른 승객 시선 걱정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다들 자기 즐기느라 바빠서 신경도 안씁니다. 뭐가 뭔지 몰라도 어디든 돌아다녀 보세요. 폼 잡고 가만히 계셔 봤자 본인 손해십니다.

승무원에게 친절하세요. 승객은 왕이 아니고, 그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또 다른 승객일 뿐입니다.


-. 크루즈의 인기 노선이 때에 따라 달라지는 편인가요?


아니요. 제 경험상 모든 노선(북미, 알래스카, 남미, 유럽, 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 아시아 등)이 모두 만실이었습니다. 단골 승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에게 노선보다는 배 자체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집이 어디에 있든 집이니까 돌아가듯이, 내가 좋아하는 배가 어디에 가든 그 배니까 다시 타는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알래스카 노선이 가장 인기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알래스카 노선 운행 중에, 퀸 엘리자베스가 알래스카에 가서 너무 좋다는 소리를 승객에게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3편에 계속)





-. 기억에 남는 승객이나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기억에 남는 승객이 꽤 많아서 가장 최근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겠습니다.

“나 이번에는 파스 안 가져왔어” 방금 돌아간 승객의 배 진동 컴플레인에 대한 내용을 이메일에 타이핑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승객. 바로 지난 봄 호주와 일본 노선 중에 만난 맥팔 할아버지가 다시 승선하신 것이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저도 모르게 너무 큰 소리로 ‘미스터 맥팔!!’ 하면서 정말 너무 활짝 웃어서 주변에서 모두 다 웃었지요. 이 승객은 일본에 아들 가족을 두고 있는 호주에 거주 중인 영국인 할아버지입니다. 프론트 데스크에 있다 보면 별의별 질문과 요구가 다 있는데, 맥팔 할아버지와의 만남도 사실 그런 별난 요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아들이 보내 준 각종 파스와 허리에 좋다는 각종 건강식품을 가방 채 가져와 저에게 도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귀찮았지만, 할아버지 인상이 너무 좋은데다가 너무 착하게 부탁하셔서 아예 로비에서 자리를 잡고 도와드렸습니다. 그 후 한달 동안 매일 같이 일부러 객실에서 내려오셔셔 허리 통증에 대해 보고도 했다가 아들 이야기도 했다가 손녀 자랑도 했다가, 그렇게 별난 요구사항에서 시작된 관계가 각종 수다를 떠는 관계로 특별하게 바뀐 경우였습니다.

그 맥팔 할아버지가 승선하자마자 짐도 안 내려놓고 데스크에 제가 있는지를 체크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찾아온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별의별 수다를 떨다가, 노르웨이에서 아름다운 오로라를 보고는 다시 호주로 돌아가셨습니다.


-. 다시 가고 싶거나 기다려지는 기항지가 있다면?


카리브해의 아루바 섬(네덜란드 령). 너무나도 다시 가고 싶은 기항지.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 빛이란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예쁜 바다와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알록달록한 건물들, 배가 불러도 더 먹고 싶었던 맛있는 해산물 요리, 그 요리에 그 바다에 너무도 잘 어울렸던 현지 맥주. 오픈덱에서 처음 밖을 바라본 순간부터 그저 너무 나가고 싶었던 기항지. 첫사랑은 누군지도 기억이 안나는데 퀸 엘리자베스에서 바라봤던 첫 아루바는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 크루즈 승무원으로서 세계를 여행하고 계신데, 평소에도 여행을 즐기나요?


평생 여행하고 살고 싶을 정도로 여행의 모든 요소를 사랑하지만, 타지 생활이 길었기에 평소 즉 휴가 중에는 서울과 동경에 있는 엄마와 남동생, 그 외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우선시하는 편입니다.


-. 크루즈 여행객이 늘어나고 있어 각 선사들도 나름대로의 발전 전략을 짜고 있을 것 같은데요.


세계적으로 지속적으로 크루즈 이용자 수가 늘고 있는 만큼, 거의 모든 선사가 새로운 크루즈선을 건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성인만을 위한 파티 크루즈를 컨셉으로 새로운 크루즈선을 건조해 선사를 만든 경영인도 있습니다. 늘어나는 승객을 놓치지 않겠다는 업계의 전체적인 움직임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그동안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느낀 부분과, 다른 선사로 간 전 동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많은 선사가 일본 노선을 적극적으로 이미 재도입하였고 계속해서 발전시키려는 의도가 강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선상에서 다음 크루즈 예약을 하는 승객들을 봐도 일본을 메인으로 한 아시아 노선이 굉장히 인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 앞으로 크루즈 산업은 어떻게 변화해갈까요?


물론 세계적으로는 계속해서 전체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선사를 운영하는 본사와 배를 직접 운영하는 승무원과의 괴리를 좁혀가며, 현실적으로 퀄리티를 높여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모든 선사가 아시아 노선을 운영하는데 맞춰,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 노선 중에 한국 기항지를 찾을 수 있도록 보다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자세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끝으로 크루즈 승무원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해주세요.


5~10개월을 혹시 싫어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근무를 하고, 웃는 얼굴로 최선을 다해 대응해야 합니다. 그 사람도 안 내리고, 저도 안 내립니다. 때로는 정말 말도 안 통하고, 못 알아듣겠고, 외롭습니다.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좋은 친구도 있습니다. 이 친구라면 평생이라도 같이 일하고 싶고, 뭐든 돕고 도움을 구할 수 있고, 밤을 새며 와인잔을 비울 수 있고, 오랜만에 내린 육지에서 함께 맛보는 시간이 꿀 같고, 음식은 더없이 맛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개의 갖가지 일들을 처리해 나가다 보면 때론 내 자신이 뿌듯하고 일이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갖가지 변수들이 수없이 교차하는 하루하루를 홀로 바다 위에서 견뎌낼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도전하십시오. 크루즈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취업 시장에 있어서 개척할만한 보기 좋은 아이템인 것은 사실이지만, 돈 받으면서 여행하는 신기한 직업 정도로 생각하고 쉽게 접근하거나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될 분야입니다.(끝)




매거진의 이전글 34살 크루즈 승무원의 생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