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일상 <기항지 편 ep. 13>
스캐그웨이
(Skagway, Alaska)
나의 최애 알래스카 기항지로 애정이 남다르다 보니 글의 시작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스캐그웨이는 알래스카 기항지 중에서만이 아니라, 나의 크루즈 인생에서도 최애 기항지구나.
아직 못 가본데도 많지만, 아시아는 물론, 북미, 남미, 북유럽, 호주, 뉴질랜드, 아프리카 등 가본데도 꽤 많다. 그중 순위를 가를 수 없는 최애 기항지이자 꼭 다시 가고 싶은 두 군데가 있는데, 바로 스캐그웨이와 아루바이다.
지금의 스캐그웨이는 작은 항구마을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인구가 700명도 안되기 때문인데, 1896년 클론다이크 골드러쉬 때는 미국전역에서 8000명도 넘게 오고 가는 꽤나 인기 많은 곳이기도 했다. 그때의 모습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지금의 그 작은 마을이 나에게는 충분한 만족감을 줬다.
배가 정박한 곳에서 5~10분 정도 걸으면 마을에 도달하는데, 가는 길에는 관광안내소 및 레스토랑이 있다. 마을에 다다르면 기차와 선로가 우리를 먼저 반기는 스캐그웨이 다운 남다른 풍경이다.
스캐그웨이 하면 사실 가장 유명한 것이 이 기차투어이다. 화이트패스 & 유콘 루트 철도 (White Pass & Yukon Route)라고 하는데, 세계적인 철도관광 중 하나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토목공학 랜드마크 (International Historic Civil Engineering Landmark)로 자유의 여신상, 골든게이트 브릿지,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 등과 함께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1896년 알래스카 남동부의 클론다이크 (Klondike)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는데, 450톤의 폭발물로 산을 폭파하여 26개월에 걸쳐 1898년에 완성한 철도가 바로 이것이다.
클론다이크 골드러쉬 (Klondike Gold Rush) 중에 무려 3~4만 명이 오고 갔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중 2만 명 정도가 탐광가가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단 몇백 명만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무려 총 2천만 온스 (570톤)에 가까운 금광이 채굴되었다고 하는데 그 많은 사람들과 금광을 화이트패스 기차가 싣고 나른 것이다.
당시의 기관차 형상을 완벽하게 복원하여, 현재는 철도관광으로서 산, 빙하, 계곡, 폭포, 터널 등 숨 막히도록 멋있는 자연경관을 경험할 수 있다. 3시간과 140달러만 있으면 경험할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담은 투어이다.
기관차를 타며 바라보는 경관도 좋지만, 난 이 마을이 처음 갔을 때부터 그저 너무 좋기만 했다. 특히 알래스카의 그 어떤 마을보다도 알록달록한 건물 사이로 크루즈선까지 보이는 광경이 너무 좋았다. 지금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 기분이 좋아질 정도이다.
마을을 거니는 것도 좋지만, 나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사한 승마체험 (Horseback Riding Adventure)도 했다. 차로 30분 정도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클론다이크 골드러쉬 국립역사공원 (Klondike Gold Rush National Historical Park).
항상 해보고 싶었던 승마를 하다니! 더군다나 알래스카에서 하다니! 투어예약을 하고 나서 당일에 이르기까지 일주일 동안 얼마나 들떠있었는지 모른다. 투어에 익숙해져 있는 말들이라 그런지 어렵지 않게 평보와 속보를 경험했다.
승마는 왕족의 유산이라고 한다. 그만큼 예의와 격식을 중요시하는 스포츠이지 싶다. 그에 비하면 내가 한건 그야말로 가벼운 체험이었다. 그래도 이 한 번의 경험 덕에 한국에서 외승과 구보까지 경험할 수 있었다.
어떤 기항지든 떠날 때는 아쉽기 마련이다. 충분히 즐기지 못해서 이기도 하고, 배에 돌아가기 싫어서 이기도 하고, 일하기 싫어서 이기도 하다 ㅎㅎ
스캐그웨이는 매번 더더욱 떠나기 싫은 기항지였다. 그 아쉬운 마음에 배에 오르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사진에 남기자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려는 것일까. 스캐그웨이를 들어오고 나가는 항로는, 아름다운 해안 마을과 배가 지나가도록 깎아내려진 듯한 산을 지나는 좁은 수로로 되어 있다. 피오르드 해안을 만끽하다 보면 어느덧 태평양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좋아한 만큼 아쉬움도 큰 거겠지.. 최애 기항지이다 보니, 내가 남긴 사진들이 내 기억만큼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동시에.. 나만의 기억에서 기록으로 남기는 이 작업이, 다시 배로 돌아갈 수 없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