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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크루 Apr 18. 2020

코로나 전쟁에서 만난 한국인 승객

격리되기 전의 기록 (2)


3월 2일


호주 시드니


시드니는 당시 항로 중 가장 주요 항구로서

적게는 약 1300명에서 많게는 약 2000명까지 체크인이 이뤄지는 항구였다.




당시 한국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었으며

곧 확진자 5000명을 바라보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여러 선사에서 공식적으로

한국을 승선 거부 국가에 추가한 상태였고

우리 선사 또한 그러했다.


승선 거부 승객을 위해 별도로 카운터를 만들었고

일부로 이를 위해 본사 영국 사우스햄턴에서 날라 온 매니저와

선내 매니저가 담당했다.




그런데 체크인 카운터에 한국인이 온 것이다.


한국 국적 소지의 승객이 6명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호주 거주자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중 2명은

한국에서 날라 온 오리지널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나는 당시 선내에서

동료들과 함께 바쁘게 땀 흘려가며 체크인 승객을 응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매니저가 한국인 승객 응대를 위해

유일한 한국인인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지금 당장 터미널로 나와달라는 것이다.




별도 카운터에는 60대로 보이는 부부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승선 거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에 따르는 조건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들은

체온 검사도 했고 굉장히 건강하고 바이러스가 없으니

승선해도 문제없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다.


당시 뉴스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코로나 바이러스는 잠복기간이 길어 더 위험하다고 보도하는 상황이었다.


더불어 전 세계가 주목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사태 때문에

크루즈는 세상천지 가장 바이러스에 취약한 곳이라 취급당할 때이다.




WTF

Excuse me....!?!?!?!?!?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는 위험하고 참담한 이 시점에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출국한 것도 모자라

크루즈 여행해보겠다고

60도 넘은 어른들이

이런 무책임한 행동을 하시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찌나 무식하고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인지

눈물이 날 정도로 창피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아 내고


최대한 친절하게 죄송하다고 머리 숙여 사과까지 해가며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4명의 일행이 있었는데

시드니에 거주하는 교민이었고

70대로 보이는 부부와 50대로 보이는 부부였다.


60대 부부가 승선하지 못하면 모두 승선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6명 모두를 한 공간에 모아

사죄와 함께 그들에게 주어질 조건에 대해 설명했다.



1) 크루즈 예약 전액 환불


2) 왕복 비행기 비용 전액 부담


3) 마일리지로 좌석 업그레이드한 비용 전액 부담


4) 자택에서 항구까지의 택시 비용 전액 부담


5) 추후 큐나드를 이용할 시

이번 예약을 위해 지불한 비용의 50%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선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크레딧으로 제공


이는 6명 모두에게 주어지는 조건이었다.



한국에서 온 부부에 한해서는


(이미 교민의 자택에서 몇 일간을 지내고 온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은 호텔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이지만)


비행기 탑승 전에 쉴 데가 필요하다면

선사 전액 부담으로

시드니 타운에 있는 5성급 호텔을 최대 3박 4일(식사 포함)까지 해줄 수 있다고 전했다.




“뭐라는 거야 얘네, 그래서 지금 그게 다야?”


50대 여성이

굉장히 언짢은 표정과 말투의 한국어로 소리 질렀다.



그러자 70대 여성이

‘내게 맡겨’라는 식으로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두 팔을 흔들어 대며 울면서 소리 질렀다.


“I need more compensation!!!!”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바지를 걷어 올리며


“나 다리 수술도 했는데 여기까지 왔다.”


"퀸 엘리자베스는 나의 드림 크루즈이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




하나라도 더 '공짜'를 받아내고 싶은데

영어는 안되니까 70대 여성 뒤에 숨어

한국말로 소리 지르는 50대 여성.


그에 맞장구쳐가며 어른스럽지 못하게

울어가며 바지까지 걷어 올리며

'공짜'를 달라 짧은 영어로 소리 지르는 70대 여성.


그 뒤에 숨어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멍하니 본인들의 아내를 쳐다보고 있는 50, 70대 두 남성.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직접 말하지도 못하면서

자꾸만 추임새를 넣는 60대 부부.


곱게 화장하고 세팅한 머리와 멋스러운 카우보이 모자,

심플하지만 세련된 코디,

명품 선글라스와 가방,

보석으로 번쩍 거리는 손가락, 팔목, 그리고 목.


먹고사는데 부족함 없이 풍족해 보이는 50, 60, 70대 어른 6명.




나에게 그들은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냄새나고 초라한 거지보다도 못한

세상 창피하고 멍청하고 불쌍한 존재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매니저는 상기 조건과 더불어 원한다면

시드니 타운에서 모두 함께 관광할 수 있도록

6명 모두에게 5성급 호텔을 최대 3박 4일(식사 포함)까지 해주겠다고 전했다.


그러자 50대 여성이 문장이 아닌 단어로

크루즈로 갈 예정이었던 태즈메이니아 관광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비행기로라도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것은 선사에서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며,

지금의 안전하지 못한 호주 국내외 상황을 고려하면

적절하지 못한 선택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70대 여성이

그럼 시드니 타운 관광을 할 때 차가 필요하니

렌터카를 부담해달라고 요구했다.




여기서 리마인드....

50, 70대 두 부부는 시드니 거주자이다.

그들의 집도 있고 물론 차도 있을 것이다.


그냥 뭐 하나라도 더 받아내고 싶은 것이다.




결국 그들은 우리가 제안한 조건에 동의한 후

시드니 담당 직원의 안내를 받아 호텔로 이동했다.




우리 선사에서 제공하는 조건은 다른 선사보다도 좋은 조건이었다.

어떤 선사는 전액 환불은커녕 일부 환불도 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들은 정말 코로나 팬데믹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걱정하고 주위를 배려할 수는 없었을까.


그들이 다시는 크루즈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우리 배에는 제발 제발 제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훌륭하고 좋은 나라다.


훌륭하기까지는 못해도 적어도 괜찮은 국민으로는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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