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과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든다.
착한 남자, 나의 모자란 점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고마운 남자.
나쁘게 보면 피에르는 덤벙대는 스타일이고 좋게 보면 작은 일에 신경쓰지 않는 스타일이다.
약은 사람이 아니고 기브앤테이크의 마인드가 없이 착하고 바른 사람이다.
나는 계획하는걸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만의 루틴을 지키며 부지런떨며 살아가는 스타일이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고, 시간을 들여서 건강하게 해먹는 밥이나 깨끗하게 정돈해놓고 살아가는 스타일. 하루를 활기차고 꽉 채우고 살아야 발뻗고 자는 스타일.
무엇이 낫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나는 내 루틴에서 조금 벗어난 일이 일어나면 그 여파가 상당하다. 해외에 혼자살면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던데 공감되지 않았다가 요즘에야 공감된다. 나는 무언가 정해진 나의 기대에서 벗어나면 상심이 크다.
우리가 서로를 채워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피에르는 쉽게 흐트러지기 쉬운 스타일이다. 자기 마음편한대로하는게 제일 우선이라그런지 어쩌다가 밤새고, 집도 어지러져 있는 경우도 많고 깜빡깜빡 하는 것도 많다. 한마디로 늘어지면 한없이 늘어지는 스타일. 나는 늘어질수가 없는 스타일. 겉으로 보기엔 내가 더 굳세보이고 피에르가 말랑해보이지만 사실 우리 둘은 정반대다.
피에르는 정말 단단한 사람이다. 그런 피에르도 감정적으로 동요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전부 나로 인한 경우가 많다. 피에르의 이런 생활 방식으로 내가 스트레스 받거나, 내가 몸이 아프거나, 아니면 다른 일로 내가 스트레스 받을 때, 피에르는 그런 나를 지켜보는 것을 유독 힘들어한다.
요즘에 작은 일들로 자주 마음 쓰이는 일이 많았다. 또 피에르가 덤벙대고 우리집 대문을 안닫고 다니는 바람에(?) 화가 너무 났다. 그래서 몸도 힘들었는데, 토요일 새벽부터 으슬으슬 아프더니 아침에 완전히 감기 몸살 근육통을 앓았다. 아프다고 하니, 이것저것 챙겨주며 밥해주고 과일 씻어다주고 하는 피에르를 보면서 우리 둘다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를 보완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1일, 우리는 우리 둘 이름으로 계약한 아파트로 들어가 찐 커플 생활을 하기로 했다. 각자의 스튜디오에 문제가 생기고 경제적으로 저렴 + 더 큰 곳으로 임대하는 목적에서다. 피에르와는 연애한지 아직 1년이 되지 않았고 내 기준으로 이렇게 빨리 동거를 시작하게 될지 몰랐다. 피에르는 전부터 생각했던 모양이고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 파리에서의 삶이 조금 더 구체화되는 것같아서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책임감도 커진다. 우리는 아마 같이 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맞는 짝인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줄 수 있는지 보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