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지쳐도, 삶은 나를 부른다》
나는 왜 늘 ‘괜찮아요’를 말할까
어릴 적 나는 ‘착한 아이’였다.
어른들이 내게 자주 하던 말은 “예의 바르다”, “공부 잘한다”, “잘생겼다”였다.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뿌듯했다.
칭찬이 곧 나의 존재 이유처럼 느껴졌다.
그 시절의 나는 늘 ‘좋은 아이’여야 했다.
예의는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아버지는 집안일엔 무심했지만, 문중 일이나 각종 모임의 임원으로 늘 바빴다.
그 영향으로 나도 언제나 겉으로는 반듯해야 했다.
그 사이, 집안의 모든 농사일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릴 적 나는 논과 과수원 일을 돕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면서도 형제들은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공부를 잘해야 부모님이 기뻐했고, 그것이 가족의 자랑이었다.
그렇게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의 이미지는 내게 의무처럼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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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에도 나는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프다고 말하면 약해 보일까 봐,
속상해도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도서관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어느 날부터인가 엉뚱한 곳으로 향하곤 했다.
책가방 속 도시락은 그대로 식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마음속을 메웠다.
그때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공허함은 ‘기대에 맞추느라 지쳐가는 마음’이었다.
늘 괜찮아야 했던 나,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릴까 두려워 감정을 감춘 채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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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나가고, 직장을 얻고, 가족을 꾸리며
그 ‘괜찮은 사람’의 역할은 더 단단한 껍질이 되었다.
회사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상사의 부당한 말에 속이 끓어도,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 번 무너지는 순간,
내가 지켜온 작은 가족의 울타리마저 흔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웃었다.
마음은 울고 있는데, 입은 늘 웃고 있었다.
삐에로처럼.
누군가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나는 자동으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그 말 한마디는 나를 지켜주는 방패였고,
동시에 내 마음을 잠식시키는 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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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잠이 오지 않았고,
별일 아닌 일에도 가슴이 뛰었다.
병원에서 신경과 약을 처방받으며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되뇌었다.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다 말하면 약해 보일까 봐
다시 괜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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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날이었다.
출근길에 버스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울컥했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었다.
“이게 정말 나인가?”
그 질문 하나가 마음을 흔들었다.
그날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거실 불을 끄고
한참을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 안의 목소리를 들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그건 누가 해준 말이 아니라,
내가 내게 건넨 첫 위로였다.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풀려나갔다.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았다.
누군가를 위해 강한 척하지 않아도,
내가 나를 이해해줄 수 있으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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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때로는 다시 “괜찮아요”를 말하며 버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말 뒤에는 ‘괜찮지 않은 나’가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나를 인정할 때,
비로소 진짜 회복이 시작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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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숨기지 않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회복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