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아무도 몰라주는 수고로움

《지쳐도, 삶은 나를 부른다》

by 수미소


남들보다 훨씬 이른 새벽 다섯 시,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잠시 망설이다가 이불을 걷고 일어난다. 세수대야에 차가운 물을 떠서 얼굴을 적시면, 아직 어둠이 덜 걷힌 창밖으로 새벽 냄새가 스며든다.

나는 시골집 텃밭으로 향한다.
밤새 내린 이슬이 고랑 사이를 반짝이며, 내 발걸음을 따라 조심스레 흔들린다.
호미를 들고 잡초를 뽑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 도시의 사람들은 아직 꿈속에 있다.
어머니의 굽은 허리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길 바라며, 내 손은 어느새 익숙한 흙의 감촉을 더듬는다.
“이제 내가 좀 도와드려야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땀 한 줄기를 닦고, 다시 회사로 향한다.

출근길의 차창 밖, 붉은 해가 천천히 올라온다.
누군가는 내가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쩜 그렇게 매일 일찍 일어나요?”
그 말에 나는 웃어넘기지만, 마음 한쪽엔 복잡한 감정이 인다.
그들이 보는 건 결과일 뿐, 그 뒤에 있는 ‘지탱의 시간’은 모른다.
누군가의 삶이 늘 단정해 보인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쓸어내고 닦고 다듬은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나는 늘 누군가의 하루를 받쳐주는 역할이었다.
어머니의 등 뒤를 지탱해온 아들로,
아내의 일상을 묵묵히 지켜주는 남편으로,
팀의 일을 조용히 마무리하는 동료로.
그 누구도 대단하다고 말해주지 않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그게 삶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퇴근 후 불 꺼진 집에 들어서면, 오늘도 늦게 들어온 아내가 부엌에서 조용히 밥을 데운다.
“오늘은 좀 일찍 왔네.”
서로 눈인사만 나누고, 그날의 피로를 말 대신 숨긴다.
밥상 위엔 식은 반찬 몇 가지가 놓여 있지만, 그 안엔 하루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내는 늘 말한다.
“이런 평범한 날이 제일 고마워.”
그 말이 전부를 설명해주는 것 같아,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밥 한 숟갈을 뜬다.

회사에서도 비슷하다.
누군가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면, 마지막으로 불을 끄는 건 늘 나다.
남들이 퇴근 후의 자유를 즐길 때, 나는 남은 서류를 정리하고, 내일의 일정표를 맞춰놓는다.
그걸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없다.
그저 내 몫의 자리를 지킨다는 게 내 방식의 책임이었다.

그런 날이 이어지면 가끔 허무해질 때가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 걸까.”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비 오는 날에도 논으로 나가셨던 그 손, 아무 말 없이 가족의 밥을 챙기던 그 시간들.
그 누구도 칭찬하지 않았지만, 그 손끝의 수고가 내 오늘을 만들었다.
그제야 깨닫는다.
나의 하루 또한, 누군가의 내일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정받을 때 행복하지만,
때로는 이해받지 못해도 버틸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의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나서고, 묵묵히 일하고, 밤늦게 돌아와도
그 수고가 쌓여 세상은 오늘도 굴러간다.

어느 날 문득, 아내가 내게 말했다.
“당신이 있어서 내가 버텨.”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그 말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알아주지 않아도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사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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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몰라주는 수고가 세상을 버티게 한다.
그건 포기가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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