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도, 삶은 나를 부른다》
남들보다 훨씬 이른 새벽 다섯 시,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잠시 망설이다가 이불을 걷고 일어난다. 세수대야에 차가운 물을 떠서 얼굴을 적시면, 아직 어둠이 덜 걷힌 창밖으로 새벽 냄새가 스며든다.
나는 시골집 텃밭으로 향한다.
밤새 내린 이슬이 고랑 사이를 반짝이며, 내 발걸음을 따라 조심스레 흔들린다.
호미를 들고 잡초를 뽑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 도시의 사람들은 아직 꿈속에 있다.
어머니의 굽은 허리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길 바라며, 내 손은 어느새 익숙한 흙의 감촉을 더듬는다.
“이제 내가 좀 도와드려야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땀 한 줄기를 닦고, 다시 회사로 향한다.
출근길의 차창 밖, 붉은 해가 천천히 올라온다.
누군가는 내가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쩜 그렇게 매일 일찍 일어나요?”
그 말에 나는 웃어넘기지만, 마음 한쪽엔 복잡한 감정이 인다.
그들이 보는 건 결과일 뿐, 그 뒤에 있는 ‘지탱의 시간’은 모른다.
누군가의 삶이 늘 단정해 보인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쓸어내고 닦고 다듬은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나는 늘 누군가의 하루를 받쳐주는 역할이었다.
어머니의 등 뒤를 지탱해온 아들로,
아내의 일상을 묵묵히 지켜주는 남편으로,
팀의 일을 조용히 마무리하는 동료로.
그 누구도 대단하다고 말해주지 않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그게 삶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퇴근 후 불 꺼진 집에 들어서면, 오늘도 늦게 들어온 아내가 부엌에서 조용히 밥을 데운다.
“오늘은 좀 일찍 왔네.”
서로 눈인사만 나누고, 그날의 피로를 말 대신 숨긴다.
밥상 위엔 식은 반찬 몇 가지가 놓여 있지만, 그 안엔 하루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내는 늘 말한다.
“이런 평범한 날이 제일 고마워.”
그 말이 전부를 설명해주는 것 같아,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밥 한 숟갈을 뜬다.
회사에서도 비슷하다.
누군가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면, 마지막으로 불을 끄는 건 늘 나다.
남들이 퇴근 후의 자유를 즐길 때, 나는 남은 서류를 정리하고, 내일의 일정표를 맞춰놓는다.
그걸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없다.
그저 내 몫의 자리를 지킨다는 게 내 방식의 책임이었다.
그런 날이 이어지면 가끔 허무해질 때가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 걸까.”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비 오는 날에도 논으로 나가셨던 그 손, 아무 말 없이 가족의 밥을 챙기던 그 시간들.
그 누구도 칭찬하지 않았지만, 그 손끝의 수고가 내 오늘을 만들었다.
그제야 깨닫는다.
나의 하루 또한, 누군가의 내일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정받을 때 행복하지만,
때로는 이해받지 못해도 버틸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의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나서고, 묵묵히 일하고, 밤늦게 돌아와도
그 수고가 쌓여 세상은 오늘도 굴러간다.
어느 날 문득, 아내가 내게 말했다.
“당신이 있어서 내가 버텨.”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그 말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알아주지 않아도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사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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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몰라주는 수고가 세상을 버티게 한다.
그건 포기가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